2023년 1~5월 기준 주요 쇼핑앱 MAU 및 설치자 현황 ⓒ와이즈앱
더군다나 11번가는 지마켓과 함께 오랫동안 한국에서 오픈마켓 사업을 하던 사업자였고요. 새롭게 등장한 쿠팡과 네이버에게 ‘지배적’ 지위는 빼앗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역사가 만들어내는 고인물(?) 셀러 네트워크는 무시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최근 11번가가 아마존에 입점하는 방식으로 해외 판매를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들리고 있는데요. 11번가 인수를 통해 아마존을 통해 한국을 나가는 물동량을 새롭게 큐익스프레스에 연결할 수만 있다면, 큐텐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겠죠.
“큐텐이 티몬과 위메프를 살 때까지만 하더라도 셀러들이 많이 중복되지 않을까 저는 좀 생각했는데요. 그런데 오픈마켓이면 이야기가 또 달라집니다. 물론 여전히 겹치는 셀러들이 있겠지만, 11번가의 규모가 규모인지라 새로 확보하는 한국 셀러 네트워크가 있을 것이고요.
좀 더 상상을 해보면 인수 이후에도 11번가와 아마존의 계약 관계가 살아있을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아마존의 글로벌망을 활용한 해외 물류 연결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존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물량까지 통제하긴 어렵겠지만, 한국에서 나가는 물량 정도는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싶고요. 이를 통해 다국간 크로스보더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또 쿠팡이 중국에 거점을 만들어서 현지 소싱을 강화했듯, 큐익스프레스가 진출한 중국과 동남아시아 제조거점과 판매자망을 활용한 한국 소싱도 가능한 시나리오겠네요”
- 크로스보더 물류업체 임원 A씨
물론 큐텐이라고 11번가를 인수할 현금이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최근 큐텐 입점사들의 정산 주기가 길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데요. 이것을 큐텐의 현금흐름이 안 좋아지고 있다는 하나의 징조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큐텐이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큐익스프레스’의 지분과 11번가의 지분을 교환하는 방식을 통한다면 현금이 부족한 것은 M&A에 큰 이슈가 되지 않고요. 또 지금까지 큐텐이 인수했던 기업들처럼 11번가 역시 이커머스 시장의 모멘텀을 잡지 못하고 기업가치가 하향 조정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기에, 오히려 ‘저가’ 매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11번가는 왜 팔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11번가가 이번 거래로 얻을 수 있는 편익은 무엇일까요? 11번가는 투자업계에 익히 알려진 SK의 아픈 손가락입니다. 분기당 수백억원 단위의 적자는 계속되는 와중, 여전히 명확한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와이즈앱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11번가 MAU는 915만으로 올해 1~4월 평균치인 916만과 비교하여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지 못했고요. SK스퀘어의 공시에 따르면 11번가의 올해 1분기 매출은 2163억원으로 직매입 비중 증대 등으로 인해 전년 동기(1400억원) 대비 54.5% 증가했지만요. 같은 기간 순손실은 248억원으로 전년 동기(265억원)과 비교하여 유의미한 개선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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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11번가의 ‘약속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올해 하반기 기업공개(IPO)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2018년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으로부터 받은 5000억원의 투자금액에 이자를 붙여 돌려줘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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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커머스 업계 전반적으로 성장 정체와 기업가치 하향 조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연내 IPO는 어렵다는 업계 평가가 지배적이고요. 앞으로 11번가가 성장의 반전을 만들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암울한 전망이 더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큐텐의 인수 제안이 들어왔다면, 11번가에게는 ‘매각’이라는 새로운 엑싯 창구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시장 항간에는 11번가 투자자들이 기업가치를 하향한 큐텐 매각을 용인하겠느냐는 의문이 나오기도 하지만요. 한 편에서는 차라리 11번가 주식을 큐익스프레스로 바꿔 가져가는 것이 11번가 투자자들 입장에서 오히려 낫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티몬과 위메프가 그랬듯, 11번가가 이커머스 업계에서 별다른 반전을 보여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면 상장을 앞둔 큐익스프레스의 큰 그림에 올라타는 것이 ‘엑싯’에 더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거죠.
“11번가는 올해 하반기까지 IPO를 못하면 투자자들의 지분을 오히려 비싸게 사와야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큐텐이 먼저 인수 제안을 했다고 하면, SK스퀘어는 오히려 고마워 할 것 같습니다. 올해 IPO가 물 건너간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생긴 것이니까요. 기존 11번가 주식을 들고 있던 LP(Limited Partner)들 입장에서도 쌍수 들고 환영할 것 같고요.
현재 11번가는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말고는 국내 이커머스 사업에 돌파구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아마존은 그간 11번가와의 협력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였단 말이죠. 다만, 큐텐은 지속적으로 공격적 M&A를 통해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사업을 강화하고 있으니, 파트너십 측면에서도 11번가가 가져갈 수 있는 이점은 있어 보입니다”
- 유승우 SK증권 연구위원
근데 정말 ‘시너지’가 나올까요?
이렇듯 큐텐과 11번가가 합쳤을 때 생길 ‘재무적인’ 관점의 시너지는 분명 있어 보이지만요. 운영 측면의 시너지에 대해서는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다소 의견이 갈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첫 번째 의문은 ‘아마존’의 향방인데요. 현재 11번가가 아마존과 체결하고 있는 계약이 과연 큐텐이 11번가를 인수한 이후에도 이어질지 ‘불확실성’이 따라온다는 의견이 있었고요. 설사 인수 이후 계약이 이어진다고 해도 11번가와 아마존의 계약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은 ‘아마존’이기 때문에, 여기 연결되는 물류망이 ‘큐익스프레스’에 연결될 지는 의문이라는 의견이 함께 나왔습니다.
두 번째로 한국 소비자 트래픽 확보 측면의 시너지에 대해서도 업계의 의견은 다소 갈렸습니다. 11번가의 MAU가 이전 큐텐이 인수한 티몬, 위메프, 인터파크쇼핑보다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일정 부분 고객 중복이 있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트래픽 측면에서 ‘영향력’을 만들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고요. 한 편에서는 M&A 이후 SK텔레콤의 지원이 끊길 것이 예상되기에, 그 트래픽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해석도 있었습니다.
“11번가 매출이 그간 견고했던 이유 중 하나는 SKT의 지원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큐텐이 11번가를 인수한다면 SK텔레콤과 연결된 멤버십이나 포인트 지급 같은 혜택들이 사라질 텐데요. 그렇게 된다면 11번가 인수는 사이트 하나 확장해서 규모를 키우는 것 말고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이고요. 의미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마존과 협업을 확실하게 끌어낼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이 또한 큐텐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마존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담당 실무자 B씨
세 번째로 큐텐에 입점한 해외 판매자의 상품을 11번가에 연결했을 때의 매출 시너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은 나왔습니다. 애초에 해외직구 상품풀이 그렇게 크지 않았던 티몬과는 다르게 11번가는 오래 전부터 해외직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실제 큐텐에 입점하는 셀러들은 11번가에도 이미 입점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업계 실무자의 평가입니다.
“큐텐의 동남아시아 쪽 상품이 그렇게 독립적인가 본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큐텐에서 잘 팔고 있는 해외 셀러 분들은 네이버에도, G마켓에도, 11번가에도 다 팔고 있거든요. 물론 중국 판매자들은 생산에 직접 관여하는 업체들이 많아서 독립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요. 그들조차도 결국에는 여러 플랫폼에 동시 입점하지 않을까요? 셀러들 입장에서는 매출이 나온다면 굳이 플랫폼을 가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담당 실무자 B씨
정리하자면 큐텐이 11번가를 인수할, 11번가가 큐텐에 매각할 양사의 이해관계는 존재하지만요. 그 결합이 실질적인 운영 측면에서 완연한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느냐는 사실 다른 문제고, M&A 이후에도 다양한 숙제가 다가올 수 있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결국 두 기업의 인수설을 ‘실체’로 완성시킬 수 있는 마지막 조각은 가격에서 나올 것 같은데요. 싸게 사고 싶은 자와 비싸게 팔고 싶은 자 사이에서 ‘적정가’를 찾을 수 있을지 앞으로의 변화를 주목할 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