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온라인 스토어에서 팔리고 있는 오징어게임 관련 상품 ⓒNetflix
반대편에서는 커머스 기업의 ‘미디어’ 확장도 만만찮습니다. 아예 콘텐츠 플랫폼을 따로 하나 만들어버린 쿠팡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티몬이 커머스와 하나도 상관없어 보이는 웹예능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티몬 이전 블랭크가 ‘고등학교 간지 대회’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이미 비슷한 짓(?)을 했습니다. 모바일 홈쇼핑 같다는 평가를 왕왕 들었지만 저마다의 문법을 찾아가고 있는 ‘라이브 커머스’도 콘텐츠와 커머스의 결합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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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커머스는 기업뿐만 아닌 개인의 삶까지 파고 들었습니다. 이미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 등 소셜 미디어 채널을 활용하여 상품을 판매하는 개인은 흔하다 못해 수두룩합니다. 이러한 개인 판매자를 모아서 플랫폼을 구축한 ‘브랜디’, ‘에이블리’와 같은 버티컬 커머스 기업의 성장세는 눈부십니다. 개인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기획사 MCN(Multi Channel Platform) 플랫폼들에게 ‘커머스’ 사업은 안하는 게 이상한 만큼 필수적인 사업 포트폴리오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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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슬퍼하는가
그러던 저에게 커머스 사업을 하는 한 대형 MCN 플랫폼 관계자와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콘텐츠와 커머스의 결합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 현실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런데 웬걸. 질문을 받은 그 분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왠지 모를 깊은 슬픔이 그의 얼굴에서 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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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던 그 이유를 저는 최근에야 다른 MCN 플랫폼 관계자와의 대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다르게 콘텐츠와 미디어를 결합하고자 했던 MCN 플랫폼의 도전은 쉽지 않은 암초가 가득했습니다.
대표적인 어려움은 ‘힘의 균형’에서 나타났습니다. MCN 플랫폼과 콘텐츠 크리에이터, 그 사이의 힘의 축은 플랫폼보다는 크리에이터 쪽에 쏠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영향력 있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커머스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MCN 플랫폼 입장에서 적지 않은 노력과 비용을 쏟아야 합니다.
예컨대 광고를 중개한다면 30~40%를 넘어서는 수수료를 크리에이터에게 지급하는데, 그렇게 해선 플랫폼에 도저히 남는 게 없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국내 대형 MCN 플랫폼들 중에선 ‘영업이익’을 남기는 곳을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콘텐츠와 커머스의 서로 다른 목표를 일체화하는 것도 큰 숙제로 다가옵니다. MCN 플랫폼들이 흔히 협업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기본적으로 미디어업자입니다. 재밌는 콘텐츠를 기반으로 더 많은 구독자와 트래픽을 만들고자 합니다. 나아가 고정적으로 채널을 방문하는 ‘팬덤’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유튜브로부터 더 많은 수익을 정산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커머스’는 기본적으로 상품을 많이 팔아 매출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매출을 만들기 위해서 콘텐츠 중간에 몰래(자연스럽게), 혹은 대놓고 ‘상품’을 노출시켜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콘텐츠의 스토리텔링과는 이질적인 무엇인가가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 밟힐 수 있습니다. 순식간에 구독자가 이탈하는 어떤 상황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이런 비슷한 사례는 2020년 뜨거웠던 유튜버 뒷광고 논란을 꺼내지 않더라도, 최근의 많은 미디어 PPL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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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인즉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상품 광고를 받아 ‘커머스’를 하더라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평소에 만들었던 콘텐츠의 방향과 부합하는 한정된 카테고리의 상품을, 그 중에서도 구독자들에게 소개하더라도 떳떳할 수 있는 상품을 골라서 받게 됩니다. 광고주의 숙제를 받은 앞광고를 명기 하더라도, 그 빈도를 늘리는 건 크리에이터들에게 또 부담스럽습니다. 여기서도 구독자의 숫자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바꿔 말하면 MCN 플랫폼 입장에선 커머스 비즈니스의 ‘확장성’이 제약된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가능성
회의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그럼에도 저는 미디어와 커머스가 결합돼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미디어를 떼고 커머스만 놓고 보더라도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은 상품을 잘 팔기 위한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상품상세 설명에 잔뜩 들어가는 사진과 텍스트, 영상도 사실 모두 콘텐츠입니다. 콘텐츠의 재미와 커머스의 매출은 별 상관이 없을 수 있지만, 콘텐츠가 커머스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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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커머스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통제가 어려운 사람 크리에이터가 아닌 처음부터 철저하게 기획된 가상의 크리에이터, ‘버튜버(버추얼 유튜버)’나 ‘가상인간’을 콘텐츠의 전면에 내세우는 방향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특정 카테고리에 걸맞은 커머스를 염두에 두고 콘텐츠를 쌓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 크리에이터와는 다르게 불미스러운 이슈에 휘말려 상품 브랜드에 타격을 줄 리스크도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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