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닷컴이 2019년 김포에서 가동한 네오(NE.O)003 물류센터 내부 모습. 신세계그룹에 따르면 네오003 물류센터가 하루 처리할 수 있는 최대 물동량(Capacity)은 3만5000건이다. ⓒ신세계그룹
하지만 첨단 자동화 물류센터라고 출차부터 고객 전달까지 가용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새벽배송 타임라인을 완벽하게 준수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마 컨설턴트에 따르면 첨단 물류센터를 짓더라도, 물류센터에서 출차하여 고객에게 곧바로 배송하는 포인트투포인트(Point to Point) 방식으로는 반경 30km를 넘어선 지역까지 새벽배송을 제공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SSG닷컴은 물류센터로부터 60km 이상 떨어진 지역까지도 새벽배송이 가능합니다. 마 컨설턴트가 보는 이게 가능한 이유는 허브 물류센터를 중심축으로 고객 접점 인근에 스포크 물류센터를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스포크 물류센터는 상품을 보관하지 않는 일종의 분류 거점(Transfer Center)입니다. 허브 물류센터에서 간선 이동하는 대형 화물차량이 스포크 물류센터까지 상품을 보내면, 1톤 소형 차량이 물량을 픽업해서 고객까지 배송을 마무리합니다.
스포크 물류센터는 허브 물류센터에 비해 크지 않습니다. 첨단 자동화라고 할만한 설비는 당연히 들어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물류센터를 활용한 네트워크 최적화로 종전 첨단 자동화 물류센터 하나로는 하지 못했던 새벽배송 권역 확장이 가능해집니다. 사실 이 방식은 SSG닷컴뿐만 아니라, 팀프레시와 같은 새벽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통, 물류기업들이 이미 시도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마 컨설턴트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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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센터에서 자동화 캐파(Capacity)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로, 세로축으로 캐파를 입체적으로 늘리고 배송 권역을 최대한 확장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한 예로 미국 미시건에서 아마존이 운영하는 수만평 규모 풀필먼트센터는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분류센터(Sortation Center), 배송 스테이션(Delivery Station)이라는 이름으로 1000~2000평이 안 되는 소형 거점들을 복합적으로 활용합니다. 아마존은 이 방법으로 우리나라 면적의 1/3에 달하는 미시건 전역의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는 아마존의 ‘첨단 물류센터 자동화 설비’가 아니라 물류센터의 상품전략, 배송전략, 네트워크 운영전략을 벤치마킹해야 합니다(마종수 한국유통연수원 컨설턴트)”
오아시스마켓에서 배울 것
새벽배송 업계에서 규모의 삼파전을 만들고 있는 업체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쿠팡과 컬리, SSG닷컴입니다. 이와 함께 다른 이유로 주목받는 업체가 있으니 ‘오아시스마켓’입니다. 오아시스마켓은 2021년 3570억원의 매출을 만들었고, 영업이익은 57억원으로 ‘흑자’입니다. 누군가는 피를 쏟으면서 경쟁하는 새벽배송판에서 오아시스마켓은 오롯이 ‘이익’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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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관계자에게 전해들은 오아시스마켓이 흑자를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오프라인 매장을 재고 최적화에 적극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유통기한이 짧은 신선식품을 다루는 새벽배송 특성상 재고는 어떤 업체에게든 항상 고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과재고는 폐기 비용으로 이어지고, 그렇다고 재고를 적게 가져가자니 ‘결품’으로 발생하는 기회비용이 무섭습니다. 쿠팡, 컬리와 같은 디지털 기반 플랫폼들이 ‘수요예측’에 그렇게 매진하는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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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마켓은 폐기 위험에 임박한 온라인 판매 재고를 ‘오프라인 매장’을 활용하여 판매합니다. 오프라인 매장 할인율을 세게 매긴다면 어떻게든 상품은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온라인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생활협동조합(우리생협)을 기반으로 오프라인 매장 네트워크를 운영해온 오아시스이기에 가능한 방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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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자를 보는 또 다른 이유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물류를 열심히 안해서입니다. 오아시스마켓의 물류센터는 경쟁사의 수만평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귀여운(?) 4000여평 규모를 운영합니다. 롯데온, SSG닷컴 물류센터에서 볼 수 있는 수천억원짜리 첨단 자동화 설비는 당연히 여기 없습니다. 오아시스마켓의 피킹 작업자들은 바구니가 담긴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손으로 고객에게 배송할 물건을 담습니다. 작업자의 휴대전화에 설치돼 있는 앱 오아시스 루트(ROUTE)가 피킹 업무를 지원하는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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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아시스는 경쟁사보다 작은 물류센터 안에서 수동 방식으로 하루 2만~2만5000건의 물동량을 처리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마 컨설턴트는 그 이유를 한정된 상품 SKU(Stock Keeping Units)에 집중되는 매출에서 찾았습니다. 오아시스마켓은 고객의 관심이 몰리는 소수의 핵심 상품을 PB(Private Brand) 개발하고, 여기 매출을 집중시켜서 운영 효율을 끌어올린다는 설명입니다. 작은 규모의 물류가 활약할 수 있도록, 고객단에서 이미 최적화된 주문이 들어오는 셈이나 다름없습니다.
“오아시스마켓은 판매하고 있는 상품 중에서 괜찮은 것이 보인다면 무조건 PB화를 합니다. 중간 유통 단계가 생략됨으로,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오아시스마켓이 다루는 SKU는 8000여개로 파악되는데, 그 중 PB는 400~500개가 안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400~500개의 SKU에서 전체 매출의 80%가 나온다고 합니다. 오아시스마켓이 하루 2만개 이상의 물량을 처리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입니다(마종수 한국유통연수원 컨설턴트)”
바꿔 말하면 오아시스마켓이 컬리나 SSG닷컴처럼 수만개의 상품 SKU를 다뤘다면, 혹은 더욱 큰 판매 규모를 만들었다면 이런 운영 방식의 한계가 찾아왔을 수 있습니다. 오아시스마켓은 흑자를 만드는 전략에 맞춘 적절한 운영 방법을 설정하여 적자투성이인 새벽배송에서 의미 있는 숫자를 만들어낸 것이죠.
요컨대 중요한 건 맹목적인 자동화가 아닙니다. 상품과 물류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따른 운영 최적화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여기 새벽배송의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작은 힌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 컨설턴트의 이야기로 마무리합니다.
“막대한 자본과 첨단 인프라 기반 자동화가 물류 경제성을 만드는 핵심 요인은 아닙니다. 물류센터에 어떤 상품이, 어떻게 진열되고 있는지부터 먼저 알아야 합니다. 상품과 사람과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자동화와 비자동화 사이의 최적점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요컨대 새벽배송의 실패는 물류의 실패가 아닙니다. 물류 이전에 앞단의 문제를 고려할 수 있다면 다음 누군가의 도전은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마종수 한국유통연수원 컨설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