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RE가 2021년 전망한 저온 물류센터 수요 증가 예측 자료 ⓒCBRE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요. ‘저온 물류센터’가 뜬다는 이 예측이 불과 1년 뒤인 2022년에 와서 전에 없던 ‘공급 과잉’으로 시장을 쓸어버릴 줄.
CASE 1 : 기저효과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 한창 감염병이 전국을 휩쓸던 그때,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누군가는 이야기했습니다. 코로나19가 끝나더라도 온라인의 편의를 맛 본 사람이 다시 오프라인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우리는 ‘뉴노멀’을 맞이할 것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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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가 지금 맞이한 현실은 어떤가요? 생각보다 사람들은 빡세게 오프라인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커머스 시장은 기저효과를 맞으며,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됐습니다. 특히 일부 카테고리에서는 ‘역성장’을 보이는 녀석까지 등장합니다. ‘음식배달(음식서비스 카테고리)’이 그 광풍을 정면으로 맞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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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온 물류센터의 대표 수요 카테고리인 ‘식품’도 그렇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기준 온라인쇼핑 식품 카테고리 거래액은 전월 대비 1.9% 성장하며 힘을 잃었고, 농축수산물 카테고리만 추려서 거래액을 살펴보면 전월 대비 1.8% 역성장 했습니다.
여기서 ‘기저효과’만 놓고 본다면 왜 저온 물류센터가 넘쳐흐르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소폭 역성장을 한 건 맞지만, 여전히 전체 시장을 보자면 이커머스는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과 2년 전까지 저온 물류센터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 이유는 물류센터가 개발되고 공급되기까지 통상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 물류센터 개발사 임원에 따르면 물류센터를 준비하고 공급을 끝마치는 데는 1만평 물류센터 기준 통상 2년 반(30개월) 정도가 소요됩니다.
앞서 2019년을 즈음해서 저온 물류센터 개발이 각광 받았다고 했죠? 이제 3년이 지났네요. 2022년을 기점으로 우후죽순 시장에 ‘저온 물류센터’가 공급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개발사들은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저온 물류센터 개발에 착수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지금 보는 대로입니다.
“기억해보면 몇 년 전까지 오프라인 유통의 온라인 전환이 계속될 것이고, 한 번 소비자가 온라인 구매에 락인되면 변화가 어렵다는 낙관적 전망이 많았습니다. 물류센터 개발사들은 그런 전망을 보고 너도나도 저온 물류센터 개발에 뛰어 들었고요. 물류센터 공급까지 대략 3년이 걸리는 데, 그 시대의 낙관적인 물류센터 공급이 2022년을 기점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시장은 어떤가요. 이커머스 성장은 얼어붙었고, 앞으로 시장이 지속 가능하겠냐는 의문까지 제기됩니다. 그 와중 몇몇 업체들은 파산하고 있습니다”
- 저온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물류기업 A사 임원
CASE 2 : 이상한 물류센터
사실 저온 물류센터는 그 자체로 괜찮은 ‘투자처’로 여겨졌습니다. 저금리로 유동성이 넘쳐흐르고, 연일 땅값이 상승하던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덩달아 저온 물류센터는 상온 물류센터 이상의 ‘평당 임대료’를 얻을 수 있기에, 기대치가 높았죠. 그러다 보니 대 물류센터 난개발 시대가 열립니다. 물류센터를 개발하는 전문 업체뿐만 아니라 아파트(!)를 개발하던 업체까지 새로운 수익처로 보이는 이 시장에 뛰어든 것이죠. 취재 과정에서 물류센터로 쓰지 못할 이상한(?) 물류센터가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확인한 배경입니다.
B2B 물류를 처리하는 전통적인 보관 물류센터와 B2C 이커머스 물류를 처리하는 풀필먼트센터는 그 특성이 확연히 다릅니다. 커넥터스에도 수차례 설명했는데, 이런 서로 다른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이커머스 운영 방법과 동떨어진 물류센터를 설계해 ‘이커머스 물류센터’처럼 공급하고 있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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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커머스 물류를 합니다. 예전 보관 중심의 수탁 물류센터와는 다르게 포장 라인이 공간에 들어가야 합니다. 격벽으로 냉동, 냉장실을 만들기도 하는데, 물류센터 레이아웃이 이런 운영 구조를 뒷받침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요즘 저온 물류센터 알아보고 있냐고 연락이 참 많이 오는데, 3~4군데 실사하면 이거 괜찮다 싶은 곳은 한 군데밖에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물류센터 레이아웃이 잘 잡혀있고, 입지가 괜찮으면 저온 물류센터라도 바로 임대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은 물류센터가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고요”
- 저온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한 물류기업 B사 대표
“부동산 개발하는 분들은 물류센터 공간을 100% 다 임대하지 못할 거라는 걱정을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물류센터 안에서도 방을 최대한 많이 쪼개고, 방마다 전실을 배정하는 건물을 몇 개 봤습니다. 이런 물류센터는 한 업체가 통으로 사용한다고 하면 너무 잘게 쪼개놔서 공간 효율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 저온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한 물류기업 A사 임원
저온 물류센터 수요자들의 증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상한 물류센터는 결국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확보한 증언에 따르면 일부 물류센터 개발사들은 업계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TC(Transfer Center)와 DC(Distribution Center), FC(Fulfillment Center)의 차이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물류센터를 설계했다고 합니다. 이는 수요자의 입맛에 맞지 않는 허수 공급을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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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살펴보면 물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개발한 물류센터가 많이 보입니다. 이름은 풀필먼트센터라고 붙여 놨는데, 작업자의 이동 동선과 층고를 하나도 고려하지 않은 레이아웃으로 만들어 놓은 곳들이죠. 이런 물류센터는 공급량에는 반영되겠지만 사실상 ‘허수’나 다름없습니다. 화주사들이 물류센터를 보는 눈이 점점 높아지고 똑똑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물류센터는 결국 공실률에 반영될 것입니다”
- 물류센터 개발사 C사 임원
CASE 3 : 그냥 비싸다
마지막 이유는 단순한데요. 현재 공급된 저온 물류센터을 운용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야기가 복수의 수요자 사이에서 들렸습니다. 실제 저온 물류센터 임대료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상온 물류센터 대비 두 배 가까운 평당 임대료를 형성하고 있고요. 전기세로 대표되는 저온 인프라를 유지하는 부가 운영비용도 큽니다. 이런 비용을 부담하기 어려운 유통, 물류업체들이 많은 것이죠. 여기서도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름철 저온 물류센터 현장에선 우스갯소리로 문 한 번 열면 5000원씩 비용이 나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실제 저온 물류센터 내부 설비와 바깥 온도 차이가 심하다 보니 전기세가 굉장히 많이 나오는 것이 맞고요. 그러다 보니 화주사들은 통짜로 저온 이커머스 물류센터 공간을 임대해서 사용하기 보다는 보관전문 창고에 최소한의 재고를 보관해두고, 그때그때 꺼내 쓰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또 저온 물류센터는 입지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냉장냉동 상품은 배송까지 고객에게 약속한 시간을 맞추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미 좋은 입지에 있는 물류센터는 다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새로 나온 물류센터 매물을 보면 고객에게 약속한 시간 조건을 맞추기 어려운 곳에 위치한 경우가 많습니다”
- 신선식품 커머스업체 D사 물류실무자
“상온 물류센터는 그냥 물류센터에 줄을 그어놓거나, 펜스를 치는 방식으로 구획을 나눌 수 있잖아요. 그런데 냉장냉동 물류센터는 유닛 쿨러(Unit Cooler)라고 불리는 시스템 때문에 구획을 나누는 것이 쉽지 않아요. 냉장차 접안도크를 차량 종류별로 마련하는 데도 비용이 꽤나 많이 듭니다. 전기세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이런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투하된 비용들은 고스란히 물류센터 수요자들이 부담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비용 부담이 크다 보니 저온 물류센터 사용을 꺼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신선식품 커머스업체 E사 물류담당 임원
그럼 이들은 저온 물류센터 없이 어떻게 물류를 처리하고 있을까요. 생각보다 컬리나 팀프레시와 같은 일부 기업들이 강조하는 ‘풀콜드’ 역량을 갖춰 물류를 처리하는 업체들은 시장에 많지 않습니다. 상품을 보관하지 않고 잠깐 거쳐 가는 분류센터(Transfer Center) 정도는 그냥 상온 물류센터, 혹은 물류센터가 아닌 빈 공터를 사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