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관리자 페이지에서 선택 가능한 물류 서비스. 모두 네이버와 돈이 섞인 기업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다. ⓒ커넥터스
네이버는 자본동맹을 통해 일정 부분 물류 운영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조금 더 깊숙하게 각 업체별 물류 운영 환경을 실사하고, 이런 경험을 기반으로 전보다 더 나은 시스템을 개발하고자 합니다. 파트너 물류사들에게 물류가 필요한 화주사를 영업, 소개해주는 등 물량 측면의 지원도 일부 따라갔습니다.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물류 플랫폼 ‘차이냐오’의 확장 방법과 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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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물류 플랫폼 ‘카카오i LaaS’를 개방형 구조에 가깝게 설계했습니다. 최소한의 기준치만 만족시킨다면 모두가 ‘카카오i LaaS’의 물류 파트너로 참가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카카오i LaaS에는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 팀프레시, 제주박스, 볼드나인과 같은 물류업체, 혹은 hy와 같은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제조사들이 파트너로 참여했습니다. hy처럼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 돈을 섞은 업체가 없진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자본과 상관없이 느슨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이들 물류 파트너들에게 ‘LFR(LaaS Front Runners)’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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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개방형’에 가깝게 물류 플랫폼을 설계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의 목표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네이버와 카카오가 설계한 물류 플랫폼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가 나타납니다.
기술 고도화를 위한 물류 플랫폼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게 있어 물류 플랫폼은 ‘수익 사업’입니다. 물류 플랫폼에 참가한 물류 운영사로부터 ‘중개 수수료’와 ‘솔루션 사용료’를 받습니다. 때문에 서비스 품질 관리가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물류 파트너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 자체로 물류 플랫폼을 이용하는 수요자인 화주사의 선택지가 늘어나고,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수익 창출에도 도움이 됩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게 물류 플랫폼은 동시에 기존 솔루션을 고도화하고 새로운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더 많은 업체들이 플랫폼에 물류 파트너로 인입되고, 화주사의 요청을 받아서 물류 수행을 함에 따라 ‘솔루션’의 성능은 AI(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더욱 고도화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플랫폼에 참가한 파트너로부터 인공지능 학습을 위한 도구 ‘데이터’를 확보하려 합니다.
여기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스스로를 ‘물류 생태계 플랫폼’이라 부르는 이유가 나옵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플랫폼에 참여한 다양한 업체의 운영 데이터를 바탕으로 ‘물류 솔루션’을 고도화하여 물류산업 생태계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고 강조합니다. 파트너들과 경쟁하며, 파트너들의 데이터를 이용해서 ‘직접 물류’를 강화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중립적인 기술 파트너로서 스스로의 역할을 규정했습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풀필먼트 기업’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옵니다. 기술로 풀필먼트를 돕는 기업이라 소개하죠.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장차 창고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류 영역의 ‘솔루션’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퍼스트마일, 미들마일, 라스트마일 물류를 아우르는 공급망 전체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때문에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지금 ‘창고를 보유한 업체’를 ‘창고가 필요한 업체’에게 중개해주는 플랫폼의 형태는 시작점이라 평합니다. 추후 초기 단계에서 확보한 물류 거점 데이터를 바탕으로 ‘글로벌’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서비스 포트폴리오를 플랫폼에 더하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쭉 했지만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당면 과제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기술’이 과연 물류업체와 화주사를 충분히 생태계에 머물게 할 유인을 줄 수 있느냐 입니다.
사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물류 운영사들은 이미 자체 개발을 했든 외주를 했든 물류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기존 익숙해진, 더군다나 돈까지 투자해놓은 솔루션이 아닌 카카오의 물류 솔루션을 사용할 만한 ‘기술’ 우위를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증명해야 합니다. 혹, 당장 기술 측면의 우위가 부족하더라도 파트너들이 플랫폼에 머물만한 어떤 유인은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데이터가 모이고, 기술 또한 더욱 고도화될 수 있으니까요.
예컨대 물량. 당장 카카오 물류 플랫폼에 참가한 파트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카카오에 기대하는 것은 기술보다는 ‘물량’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플랫폼에 진입한 파트너들의 마음을 앞으로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얼마나 채워줄 수 있을지 귀추를 주목할 만합니다.
네이버 커머스를 위한 물류 플랫폼
네이버의 ‘물류 플랫폼’ NFA는 카카오와 다르게 수익성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애초에 NFA는 네이버 커머스의 ‘배송 속도’를 증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된 플랫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네이버의 물류 플랫폼은 네이버의 자체 커머스 플랫폼인 ‘스마트스토어’, ‘브랜드스토어’ 운영 업체로 사용자가 제약됩니다. 물류 플랫폼이 구동되는 환경 또한 ‘네이버쇼핑 판매자 관리 페이지’라는 게 이런 부분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물류 니즈가 있는 화주사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카카오의 물류 플랫폼과는 다르죠.
실제 NFA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입점한 49만개 이상의 판매자, 브랜드스토어에 입점한 618개 이상의 브랜드업체들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고도화되고 있습니다. 퀵커머스, 새벽배송, 콜드체인 배송, 동대문 패션 사입 등 다양한 역량을 갖춘 물류기업들을 플랫폼 파트너로 유입하고 판매자들의 다양한 ‘물류 니즈’를 충족시키는 ‘온디맨드 물류’를 지향합니다. 네이버 판매자들이 플랫폼에서 계약한 물류업체에 견적에 따른 물류비용을 지불할지언정, 플랫폼을 운영하는 네이버에 따로 사용료를 지급하진 않습니다.
네이버의 물류 플랫폼 입장에서 숙제가 있다면 ‘새로운 판매자’를 플랫폼에 유입시키는 것입니다. 플랫폼의 공급자는 자본 동맹으로 어떻게든 만들어놨는데, 정작 수요자인 ‘판매자’들이 네이버의 물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빠른 물류는 저 멀리 떠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49만 스마트스토어 판매자 군단 있지 않냐고요? 사실 까놓고 말해서 소형 SME 판매자들은 물류업체에게는 돈이 안 됩니다. NFA 플랫폼 파트너 중에서도 서비스 사용을 위한 최소 수준의 물동량을 정해두는 업체가 있는 데, 다 이유가 있겠죠. 물론 소규모 판매자를 받는 NFA 물류 파트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당장 돈이 돼서라기 보단 판매자가 성장하면 만들 수 있는 미래 수익성에 투자를 하는 개념이라 봐야 합니다.
그럼 물량이 많은 대형 스마트스토어 판매자 혹은 브랜드스토어 입점업체를 유입시키면 되지 않냐고요? 안타깝게도 거대한 물동량을 다루는 판매자, 브랜드업체들은 이미 어떤 형태로든 ‘물류’를 이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가 물류센터를 구축했든, 3자 물류업체를 통해 아웃소싱을 하든 말이죠. 이들이 물류센터를 뒤집어엎고 이전하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NFA 플랫폼을 이용할만한 유인을 네이버는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네이버는 최근 물류 플랫폼에 ‘쿠팡’의 방식을 도입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판매자들의 물류 플랫폼 인입을 유도하면서, 단순히 물류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매출 증대’가 가능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네이버가 고객 접점의 ‘플랫폼’을 직접 운영하고 있기에 가능한 운영의 묘입니다. 네이버가 맘만 먹는다면 NFA를 이용하는 판매자들의 ‘노출’을 얼마든지 밀어줄 수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