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의 정책에 유행 주기가 있다면 지금 돌고 있는 유행은 ‘물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먼저 물류정책과를 독립시켰던 서울시에 이어 인천시 역시 독립적인 물류 정책 전담 부서 ‘물류정책과’를 최근 만들었습니다. 서울시와 인천시 모두 기존 왠지 모르게 붙어있었던 ‘택시물류과’의 업무에서 물류를 분리시켰습니다.
인천시가 물류정책과를 분리하고 처음으로 진행하는 물류사업이 이달부터 인천 연수구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인천시가 내세운 키워드는 ‘공유 물류’입니다. V2V(Vehicle to Vehicle) 방식의 공유 물류망을 도입해 당일배송 서비스를 구축하겠다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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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2V’에 ‘공유 물류’라고 하면 그게 뭔가 혼란할 분들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 글을 통해 인천시가 추진하는 물류사업의 배경과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관에서 물류를 주목한 이유
인천시의 이번 사업은 국토교통부가 공모한 ‘디지털 물류 서비스 실증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습니다. 첨언하자면 앞서 커넥터스가 소개했던 서울시의 사업 역시 마찬가지로 국토교통부의 동일한 국책 사업에 따라 실행됐죠. 요컨대 현재 지자체 단위로 진행하고 있는 많은 물류사업의 뒷배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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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하여 진행되는 사업인 만큼 인천시의 물류사업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도 ‘공공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인천시 김원연 물류정책과장에 따르면 이번 당일배송 사업으로 1) 생활물류 급증으로 인한 각종 문제 개선, 2) 소상공인 유통 경쟁력 확보, 3) 당일배송 생활권 구축, 4) 신규 일자리 창출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한다고 하는데요.
여기서 생활물류 급증으로 인한 각종 문제 개선이란 도심 내 ‘물류시설’ 확보가 어려운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배달의민족의 B마트로 대표되는 빠른 배송 퀵커머스 서비스가 확장되면서 도심 내 사무실, 상가 부동산을 ‘물류센터(Micro Fulfillment Center)’로 이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물류시설’은 전통적인 혐오시설입니다. 왠지 모르게 물류센터가 들어선다고 하면 많은 화물차량이 오가며 매연이 발생할 것 같고, 우리 동네의 안전이 위협받을 것 같고, 우리 동네 집값에는 도무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상가 입장에서도 손님을 모으는 데 오히려 방해만 될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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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도심 물류센터 수요가 있는 기업들은 쉽게 도심내 물류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웠습니다. 혹여 확보했다 치더라도 이후 수시로 지역 주민의 민원을 몸으로 견뎌내야 했습니다. 인천시는 이런 물류센터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현상을 이번 시범 사업을 통해 해소하고자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V2V 기반의 공유 물류’를 바탕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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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상공인 유통 경쟁력 확보’와 ‘당일배송 생활권 구축’은 사실상 연결돼 있는 사업 배경입니다. 현재 전국 라스트마일 물류망의 대표는 누가 뭐래도 ‘택배’입니다. 택배는 전국 단위 허브앤스포크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특성상 ‘당일 집하, 익일 배송’을 기준점으로 움직입니다. 집하된 상품을 중앙 허브터미널까지 간선 이동시키고, 분류하여 다시 지역 서브터미널까지 간선 이동시키는 과정이 추가되기 때문에, 기존 표준 택배 시스템으로는 ‘당일배송’ 서비스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인천시가 이번에 시범 운영하는 사업은 인천시내 ‘당일배송망’ 구축을 목표로 합니다. 쉽게 접하지 못했던 당일배송 서비스를 바탕으로 인천시민의 편의가 증대되길 기대한 것이죠. 당연히 인천시는 기존 택배와는 다른 물류 시스템을 기획했고, 이 시스템의 사회적, 경제적 효과를 검증하고자 하는 것이 이번 시범 사업의 목적입니다. 사업성과에 따라서 연수구 이외의 지역까지 범위를 확대하고자 준비하고 있고요.
여기 더해 인천시는 인천시 소재 소상공인들이 당일배송 서비스를 이용하게끔 연결합니다. 인천시는 2021년 4월 인천시 중소제조기업의 공동 온라인 판로 브랜드 ‘인천직구’를 론칭했는데요. 2022년 7월 기준 인천에 본사 또는 공장이 소재한 600여개의 중소 제조, 브랜드기업들이 인천직구에 입점하여 자체 생산한 1만여개 품목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 인천직구 입점 소상공인들이 순차적으로 이번에 구축한 당일배송 이용 화주사로 들어설 계획입니다.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전에 하지 못했던 ‘당일배송’ 서비스를 바탕으로 부가적인 매출 창출을 기대할 수 있게 되겠죠.
마지막 배경인 ‘지역 일자리 창출’은 어쩌면 당연하게 연결되는 것일지 모르는데요. 인천시는 이번 시범 사업에 필요한 전기 화물차 배송기사 15명과 거점 관리 인력을 모두 ‘인천시’에 거주하는 지역 주민으로 채용하게 했습니다. 현재는 30명 정도의 지역 주민이 인력으로 고용돼 소소해 보일 수 있지만, 향후 사업성과에 따라서 채용 규모는 지금보다 커질 수 있겠죠. 그 자체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됩니다.
인천시도 물류 연합군
그렇다면 인천시는 어떻게 ‘물류’ 사업을 기획했을까요? 앞서 소개했던 서울시의 물류사업처럼 인천시가 ‘직접’ 물류를 하는 구조는 아닙니다. 인천시는 기획과 점검, 예산지원을 하는 정도로 사업에 참여합니다. 실단의 물류는 브이투브이, 롯데글로벌로지스, 삼영물류, 패스트박스, NS홈쇼핑, 휴맥스와 같은 민간업체들이 중심이 돼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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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당일배송 물류 운영을 총괄하는 업체는 ‘브이투브이’고요. 롯데글로벌로지스와 삼영물류, 패스트박스, NS홈쇼핑은 당일배송에 태울 ‘물량’을 지원하는 역할로 참여했습니다. 그 자체로 유통 화주사인 NS홈쇼핑뿐만 아니라 3PL업체인 롯데글로벌로지스와 삼영물류, 패스트박스 역시 기존 그들이 영업, 운영하고 있던 화주사의 ‘물량’을 당일배송과 연결하고 싶은 니즈는 있었거든요.
마지막으로 브이투브이의 전략적 투자사이기도 한 휴맥스는 주차장 플랫폼 ‘하이파킹’을 통해 물류 운영을 위한 공간을 지원합니다. 이번 사업을 통해 ‘물류센터 없이’ 차량 네트워크 간 화물 이동을 통해 3~9시간 이내 배송하는 당일배송 서비스를 구축한다고 하는데요.
여기에 사용되는 인천시 연수구 내 주차장 두 곳을 휴맥스가 제공합니다. 주차장이 물류를 위한 ‘공유 거점’으로 사용되기에 공유 물류이고, 물류센터 없이 차량 간 상품 이동으로 당일배송 프로세스를 구축하기에 ‘V2V 방식’입니다.
시작된 공유 물류의 모습
인천시의 물류사업은 지난 8월 1일부터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앞서 ‘물류센터 없이 차량 간 이동’으로 당일배송 프로세스를 구축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운영 프로세스에 물류센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물류센터의 숫자를 ‘최소화’하는 방식이라 보는 게 더 맞는 표현입니다.
운영 순서를 요약하자면 삼영물류와 패스트박스, 롯데글로벌로지스 인천 물류센터와 NS홈쇼핑 이천 물류센터에서 당일배송으로 나갈 상품을 별도로 추려 출고장에 대기시켜두고요. 이렇게 대기한 물량을 브이투브이가 운영하는 간선 화물차량이 당일 집하합니다.
그렇게 화주사 물류센터를 출발한 상품들은 브이투브이가 운영하는 도심 물류거점(인천 중구 항동 위치)에 떨어집니다. 브이투브이는 지역내 공장, 카센터 등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구축한 이 도심 물류거점을 ‘광역 정류소’라 부르는데요. 여기서 인천 연수구로 향하는 상품들을 재차 배송 권역별로 분류합니다. 택배 허브터미널과 유사한 역할을 도심지에 위치한 100~200평 규모의 작은 허브가 맡아 처리한다고 보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