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저만 해도 대형마트를 언제 다녀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정확히 인지하진 못 했으나 분명 물가부담이 작용한 듯한데요. 최근 식료품, 생필품 소비 품목을 보면 대부분 ‘온누리 페이 충전’ 후 ‘집 주변 시장이나 슈퍼마켓에서 소비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 대형마트에서 주로 구매하던 PB상품과 과자, 음료, 주류 등은 어떻게 구매하느냐? 집 앞 이마트24를 찾아 1+1 또는 2+1 행사를 노립니다.
저의 사례 외에도 편의점 소비와 관련된 여러 현상은 이제 트렌드가 됐습니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식사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편도족’이라는 말이 등장했고요. 맥주, 빵, 과자 등 각종 실험제품의 제1순위 입점 대상으로 편의점이 거론되더니, 최근에는 정육과 수산식품까지 품목을 무한히 늘리고 있는데요. 작디작은 편의점들이 모여 대형마트와 경쟁하게 된 지금의 모습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유통업계 관계자들과 마케터들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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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의 팝업스토어, 편의점
지난 커넥터스 콘텐츠에서 소개했듯 요즘 마케팅 시장에서 가장 핫한 요소는 ‘팝업스토어’입니다. 정규매장 대비 고정비는 최소화하면서 화제성을 무기로 소비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최고의 기법이라 평가받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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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팝업스토어는 소위 ‘잘 나가거나’, ‘그래도 뭐가 좀 있는’ 브랜드들의 전유물입니다. 백화점이나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열려면 그래도 오프라인 공간에서 다양한 상품과 오브제를 일관성 있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요. 그러려면 보유한 상품이 다양하거나, 또는 긴 시간 대중들에게 노출할 브랜드 로고 또는 상징색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거죠. 아니면 소수지만 강력한 팬덤이라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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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편의점은 위와 같은 요소를 충족하지 못한 상품이나 브랜드, 신제품에게 마치 팝업스토어를 연 듯한 효과를 줄 수 있다는데요. 현직 마케터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요즘 편의점을 통한 마케팅은 웬만한 팝업스토어만큼 화제성이 좋거든요. 크림빵이나 수제 맥주 사례에서 알 수 있는데, 이제 소비자들은 편의점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특정 편의점 브랜드와 협력해 특정 매장에만 단독 공급하는 상품이 많은 관심을 받아요. 단독 팝업을 여는 게 부담스러운 브랜드나 상품이 편의점을 많이 찾는 거죠.
또 팝업스토어엔 없는 편의점만의 강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소비자 접근성이 국내 어떤 유통채널보다 뛰어나고요. 이를 통해 쉽고 빠르게 소비자 반응을 관찰하는 게 가능합니다. 필요하다면 1+1 같은 이벤트를 열어 재고를 빠르게 소진해 버릴 수도 있어요.
특히 편의점은 브랜드 본사부터 점주까지 매우 이벤트 친화적이라 소통이 원활한데요. 이게 크게 작용합니다. 신상품이나 한정판 상품을 성공적으로 출시하면 모두 윈윈하는 구조란 걸 잘 이해하고 있기에 협력 만족도가 높은 편이에요”
- 브랜딩/마케팅 기업 C사 시니어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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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CU에서라고?
이처럼 편의점이 또 하나의 팝업스토어이자, 각종 협력 상품과 이벤트 상품의 본진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CU의 영향이 컸다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생각인데요. 여기엔 여러 근거가 있으나 그중 주요한 내용 몇 가지를 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CU는 왕좌를 원합니다. 편의점 수로 GS25와 CU는 늘 1~2위를 다투는 사이지만, 한때 편의점 브랜드 평가에서 CU는 GS25보다 밀리는 추세였습니다. GS25가 ‘혜자도시락’ 등 각종 상품 연타석에 성공하면서 소비자들의 선호가 몰렸기 때문인데요.
이는 매출액이 증명하기도 합니다. 2022년 기준 여전히 CU 매출액(7조6158억원)은 GS25(7조7800억원)에 근소한 차이로 밀려 2위입니다. 다만 매년 격차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같은 해 기준 GS25 매출액은 지난해 대비 600억원 늘어난 반면, CU 매출액은 약 8000억원이 늘었거든요. 점포 수는 GS25를 약 300개 차이로 넘어서는 데 성공했고요.
관련해 유통업계는 근 5년간 CU가 그 누구보다도 신제품 출시와 품목 확장, 제조사 간 협력에 적극적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유명한 연세우유크림빵 시리즈가 CU 작품이고요. 지난 3월 3일 삼겹살데이엔 편의점 삼겹살을 선보이며 정육코너를 확장하더니 지난주엔 냉동 갈치살과 고등어살을 추가해 수산물까지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17일엔 컬리와 업무협약을 맺어 공동 상품 개발, CU 매장을 활용한 픽업 서비스 개발, 콜라보 혁신 매장 기획에 나선다고 밝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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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는 ‘혼자’여서 가능했다
위와 같은 CU의 행보가 가능했던 이유는 둘째로 CU는 혼자이기 때문입니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오직 CU만을 보고 달립니다. 모든 유통, 물류, 영업, 기획 역량을 CU에 집중할 수 있는데요. GS25와 세븐일레븐, 이마트24는 사정이 좀 달라요. ‘별로 친하지 않은’ 형제들을 신경 써야 하거든요.
“그나마 GS25는 좀 낫다고 들었어요. GS리테일 아래에 편의점 GS25와 슈퍼마켓 GS더프레시가 있는 구조잖아요. 그래서 퀵커머스 같은 프로젝트를 비교적 빠르게 추진할 수 있었고요. 재고 관리, 인력 배치, 배송 등에 필요한 시스템과 오퍼레이션을 함께 고민할 수 있거든요.
이건 신상품 출시나 이벤트 진행 같은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GS25에서 하는 이벤트를 GS더프레시와 연동하기도 하니까요. 물론 분명히 서로 간 이해관계는 다르겠죠. GS25는 가맹 중심이고 GS더프레시는 직영 비중(2022년 기준 40.6%)이 높으니까.
반면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는 각각 롯데마트, 이마트와 완전 남남이거든요. 차라리 사이라도 좋으면 다행일걸요? 서로 매출로 경쟁하는 관계지 아름다운 협력 같은 건 기대도 안 할 겁니다. 이번에 포인트 제도만 해도 보세요. ‘스노우포인트’라고 롯데마트 단골용으로 앱이랑 포인트를 또 따로 만들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편의점 쪽에서 뭘 해보려 해도 협조적이지 않고, 또 요즘 같은 불황에는 서로 견제하기 바쁜 거죠. 그 사이 CU는 치고 나갈 수 있고요. 저도 요즘 머리 아픕니다”
- 대형 유통사 L사 계열사 영업기획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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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과 함께 1위 차지할 수 있을까
CU 측에 의하면 CU의 식재료 부문 매출신장률은 2021년 21.4%, 2022년 19.1%, 올해 상반기까지는 27.2%라고 합니다. 매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인데요. 그만큼 대형마트보다는 편의점을, 편의점 중에선 CU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습니다.
다만 편의점이 가진 물리적 한계는 명확합니다. 근거리 출점 제한 규제가 있는한 어느 순간 매장 수 확장은 더 이상 어려워질 것이며, 이는 브랜드 전체 매출의 정체로 이어질 게 분명하니까요. 지금까지 소비자 집 근처라는 접근성을 주 무기로 사용한 편의점이기에 매장 수 정체는 그만큼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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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CU가 컬리와 업무협약을 맺었다는 소식은 매우 시기적절해 보입니다. 지금까지 CU가 끌어올린 MD(머천다이징) 역량과 소비자 선호도를 컬리를 통해 온라인으로 확장하겠다는 의미인데요. 컬리 역시 특유의 감성과 큐레이션 역량으로 여기까지 온 플랫폼이기에 양사 궁합이 잘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협력 역시 CU는 혼자였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GS25와 세븐일레븐, 이마트24는 모두 그룹사 차원의 온라인 플랫폼을 이미 가지고 있거든요. 해당 사업이 지지부진한 것과 별개로 편의점 측이 별도로 잘 나가는 온라인 플랫폼과 손잡을 수는 없겠죠. 반대로 CU는 직접 진출보다 간접협력을 선택할 수 있었고요. 이는 컬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CU는 2023년 편의점 업계 매출액 1위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이를 저지하기 위해 GS25는 또 어떤 카드로 반격에 나설까요? 예고된 지각변동에 편돌이 출신이자 편의점 음식 마니아인 저는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