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분하게도 저는 올해 하반기부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미래물류기술포럼이 지원하는 ‘융합물류기업분과위원회’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담당 연구원과 총 5명의 서로 다른 IT 및 물류기업 대표자들을 분과위원으로 모시고 매달 모여서 업계 동향과 물류 정책 관련 제언을 주고받는데요.
최근 있었던 회의의 주제는 산업별 2023년 회고와 2024년 전망이었습니다. 이날 참여한 분과위원 분들은 각각 ‘수출입 물류’, ‘미들마일 물류’, ‘풀필먼트’, ‘라스트마일 물류’와 관련된 플랫폼 및 서비스 기업의 창업자였는데요. 물류업계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이슈들을 변화의 최전선을 뛰고 있는 기업 대표자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분명히 ‘혹한기’는 왔다
수출입, 미들마일, 풀필먼트, 라스트마일 물류를 막론하고 모든 물류 스타트업 대표자들이 공감했던 이슈는 2023년에도 이어졌던 ‘유동성 악재’입니다. 팬데믹 기간의 유동성 파티는 2022년부터 사실상 끝이 났고요. 투자자들이 몸을 사림에 따라서, 적자를 감수하며 더 큰 성장을 추구했던 많은 스타트업 비즈니스 모델에는 적색등이 켜졌습니다.
물류업계에서도 위기 신호는 관측됐습니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 인프라와 인력 규모를 축소하는 구조조정이 곳곳에서 관측됐고요. 유동성 호황기에 받았던 높은 기업가치를 희생하고, 낮은 가격에 기업을 매각한 기업 사례도 보였습니다. 이조차 못한 기업들은 결국 조용히 문을 닫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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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더해 물가 상승과 이자 부담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전방 소비 시장의 침체는 물류업계 전반의 수요에 악영향을 줬습니다. 특히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과 정확히 연결되는 파생시장인 ‘풀필먼트’와 ‘라스트마일 물류’는 그 영향을 직격으로 받았고요. 퍼스트마일과 미들마일로 분류되는 수출입 물류와 화물운송 업계 역시 침체된 수요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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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회의에 참가한 물류 스타트업 대표자들도 거시 경기 악화를 몸으로 느끼고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면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생각하고 있는 대표자들의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수출입 물류 : 플랫폼이 ‘연결’된다면
국제물류 플랫폼을 운영하는 A사 대표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봅니다. 그는 “수출입 물류 시장의 악재는 올해가 시작점이며 내년, 이듬해에는 더 안 좋아질 수 있는 구조가 보인다”고 평했습니다. 그가 지목한 당면한 위기의 근본 원인은 ‘초과 공급’에 있는데요. 팬데믹 기간 해운선사들은 앞으로 지속될 호황을 예측하며, 새로운 선박을 발주했고요. 경기 불황으로 수요 성장률이 꺾인 상황에서, 수요의 배수 이상 되는 공급이 2025년까지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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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늘어날 공급 추세 속에서, 수요가 얼마나 반등하여 공급을 뒷받침해줄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의견이 나왔는데요. 와중 해운을 넘어서 풀필먼트, 육상운송 등으로 투자를 하여 ‘종합물류기업’으로 나아가며 위험을 분산한 글로벌 선사들의 사례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와 함께 찾아온 경기 불황은 화주사들을 조금 더 ‘비용’ 측면에서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연 단위, 분기 단위를 넘어서 ‘월 단위’로 비딩을 진행하며, 물류 서비스 비용을 최적화하는 화주사들의 사례가 나타나고 있고요. 한 컨테이너를 전부 사용하여 운송하는 FCL(Full Container Load)이 아니라, 여러 화주사의 소규모 물량을 한데 모아서 컨테이너에 담는 LCL(Less than Container Load)에 대한 니즈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화주사의 서비스 니즈가 고도화됨에 따라서 플랫폼이 단순히 화주사와 포워더를 중개하는 마켓플레이스를 넘어서, 직접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 또한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LCL만 하더라도 FLC을 중심으로 업무를 처리하던 전통적인 포워더들은 관리를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가 함께 나왔습니다.
하지만 플랫폼이라고 해도 드넓은 물류 영역에서 모두 영향력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데요. 이러한 상황에서 그간 분절된 채로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던 물류 플랫폼들이 서로 연결되는, 일종의 ‘연대’가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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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수출입 물류를 위한 디지털 포워딩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플렉스포트(Flexport)는 지난 5월 쇼피파이 로지스틱스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는데요. 여기에는 쇼피파이가 이전 인수했던 풀필먼트 스타트업 딜리버(Deliverr)가 포함됐고요. 이는 플렉스포트가 국제물류를 넘어서 풀필먼트 및 라스트마일 배송까지의 ‘연결점’을 마련한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2024년에도 이처럼 ‘종합물류’ 서비스를 연결하고자 하는 동맹군은 계속해서 늘어날 가능성이 보인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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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마일 물류 : 본격화된 대기업 침투, ‘차별점’을 찾아야
다음으로 미들마일 물류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 B사 공동창업자의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특히 미들마일 물류는 2023년 통신 3사를 비롯해 카카오모빌리티, 물류 대기업인 CJ대한통운까지 뛰어들어 화제가 된 물류 전장이었고요. 2024년에는 이들 대기업들이 각자의 역량을 강화하면서 경쟁을 시작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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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인 B사 역시 많은 투자자들로부터 대기업들이 뛰어드는 ‘경쟁 환경’과 관련한 우려를 전해 들었다고 하는데요. 이들과 경쟁하고도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뾰족한’ 차별점을 강화하는 형태로 2024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B사가 생각한 차별화 포인트는 ‘용달’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물동인데요. 현재 시장에 진출한 대기업 플랫폼들은 대형 거래처와 계약을 바탕으로 한 B2B 물류를 포함하여 운영하는 경우가 많고요. 이와 같은 형태의 물류는 거래처 대상의 많은 관리 포인트가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반면, B사는 용달 화물 영역에서는 최대한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디지털 플랫폼 기반 ‘자동화’가 용이할 것이라고 봤고요. 실제로 B사는 올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사람 작업자가 개입하지 않은 ‘자동 배차’ 프로세스를 시작하고자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자동화는 재무 건전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측인데요. B사가 직접 해본 결과, 용달 물류의 영업이익률은 기업화주 대상 물류 대비 오히려 3~10% 이상 높게 나타났다고 하고요. B사는 2024년 흑자 전환을 증명하고 수익성을 갖춘 이후에는, 의약품 물류와 같은 전문 역량을 갖춘 운송업체를 M&A하여 서비스 역량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었습니다.
풀필먼트 : CJ대한통운의 ‘틈새’를 찾아서
풀필먼트 서비스 회사 C사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의 이야기도 들어볼까요? 그에 따르면 현시점 풀필먼트 시장의 메가트렌드를 만들고 있는 기업은 ‘네이버’고요. 네이버의 도움을 통해서 2023년 풀필먼트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회사는 CJ대한통운이라는 평가입니다. 쿠팡의 대항마로 키우고 있는 네이버의 빠른 물류 솔루션의 이름이 ‘도착보장’인데요. 현시점 네이버 커머스의 성장 동력인 ‘브랜드스토어’ 화주의 도착보장 물량을 처리하는 파트너로 CJ대한통운은 빠르게 규모를 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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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사 대표는 2024년에는 본격적으로 풀필먼트 시장에서 옥석이 가려질 한 해가 될 것이라 평가했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CJ대한통운으로 대표되는 지배적인 사업자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시장의 니즈를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C사의 경우 이를 위한 역량을 ‘온디맨드 물류’에서 찾았습니다. 여기서 온디맨드 물류란 광고 전단지나 설명서를 함께 포장해주는 등 판매자들의 개별 니즈에 최대한 맞춘 이커머스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데요. 대기업들은 표준화된 그들의 업무 시스템에 고객사들을 최대한 맞추고자 하기 때문에, 개별 판매자들의 성향에 맞춘 복잡한 작업이 수반되는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긴 어렵다고 봤고요. 이 영역을 오히려 강화하여 서비스에 불만 있는 고객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크로스보더 이커머스’에도 주목하고 있었는데요. 특히 최근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발 초저가 상품들의 한국 소비가 늘어나고 있고요. 한국 이커머스 판매자와 브랜드들이 일본, 동남아시아 등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C사 역시 글로벌 물량을 처리할 수 있는 물류 인프라를 확충함과 동시에, 관련 물량을 연결해줄 수 있는 글로벌 물류기업 및 플랫폼과의 제휴를 강화하고 있었습니다.
라스트마일 물류 : ‘동맹군’이 만들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당일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라스트마일 물류스타트업 D사 대표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요. 특히나 적자를 감수한 운영이 일반적이었던 라스트마일 물류 스타트업들 중에서는 당장의 현금흐름에서 문제가 발생한 곳들이 많이 나타났고요. 추가적인 투자 유치가 어려운 상황에서, 직접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비용을 최소화하는 ‘도급’ 구조로의 변화가 2023년 관측됐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다보니 생긴 반동은 당일배송 서비스의 품질 저하인데요. 서비스에 불만족한 화주사들이 당일배송 서비스에서 발을 빼고, 택배로 회귀하는 모습이 왕왕 보이고 있다고 하고요. 결국 물량을 갖춘 관계사나 제휴사의 든든한 지원을 받는, 동시에 지속가능한 내실 있는 운영 구조를 만들어둔 소수 당일배송 업체만이 위기에서 살아남아 재편될 것이라 봤습니다.
한 편에서는 라스트마일 물류업계에서도 기업 간 ‘통합’을 논의하고 있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데요. 물량을 갖춘 이커머스 기업과 라스트마일 물류업체 간의 제휴뿐만 아니라요. 풀필먼트와 라스트마일 물류처럼 인접 업종과 연합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수익성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결과는 2024년에 하나둘 나타날 전망이며, 그 중에는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서 생존에 성공하는 배송업체도 등장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여기까지 서로 다른 물류 업종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면요. 결국 ‘차별화’와 ‘연합군’이 2024년의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차별화’에는 비즈니스 측면의 운영 구조 변화뿐만 아니라, 기술 활용이 함께 논의되고 있었고요. ‘연합군’에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연결하는 제휴뿐만 아니라 M&A까지 고려되고 있었으며, 합쳐진 기업들의 프로세스를 하나로 연결하여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통합’의 필요성도 주목받고 있었습니다.
지금 물류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독자 여러분들은 어떤 변화를 준비하고 있을까요? 오늘 전해드린 4명의 물류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생각들이 다른 분들의 비즈니스에도 작은 힌트로 다가갔기를 희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