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 : ‘수면음료’를 아시나요?
‘수면음료’라고 들어보셨나요? 저도 이번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처음 알게 됐는데요. 누구나 잠이 잘 오지 않아 늦은 새벽까지 뒤척였던 경험 한 번쯤 있잖아요? 저도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어서, 다음날 비몽사몽한 상태로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있는데요. 수면음료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마시면 숙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능성 식품’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생소할 수 있지만, 수면음료는 이미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유의미한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hy(한국야쿠르트)의 기반 기술 제공 사업자라 할 수 있는 일본 야쿠르트혼샤(ヤクルト本社)는 2019년 숙면을 돕는 유산균 음료 ‘야쿠르트1000’을 출시했는데요. 니혼게이자이(닛케이)의 보도에 따르면 이 제품은 2021년 4~9월 기준 하루 115만개 이상씩 팔려나가며 일본 소비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몰고왔고요. 2023년 초 닛케이트렌드가 선정한 2022년 히트상품 베스트30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왜 한국에서는 ‘수면음료’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8년 85만5025만명이었던 수면장애 진료 인원은 2022년 109만8819명으로 28.5%나 늘었다고 하는데요. 이는 진료를 받은 인원만을 산정한 통계이기 때문에, 실제 크고 작은 수면 장애를 호소하는 인원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의학계를 인용한 여러 미디어 보도에 따르면 한국 국민 3명 중 1명이 일생에 한 번은 불면증을 겪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요.
물론 이들은 ‘멜라토닌’과 같은 호르몬이 포함된 전문 의약품을 처방받을 수 있겠지만요. 멜라토닌 과다 섭취에 따른 부작용이 미디어에 계속 언급되는 만큼, 관련 수면제 처방은 걱정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보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부작용이나 중독성 걱정 없이 복용할 수 있는 음료는 어디 없는 것일까요? 마치 우리가 술자리를 한 다음날 숙취로 괴로워할 때 병원에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요. 동네 편의점에 방문하여 숙취해소 음료를 구매하여 사먹는 것 처럼요. 국내 최초로 수면음료 브랜드 ‘코자아’를 개발한 스타트업 로맨시브 이수현 대표의 생각도 여기 닿았습니다.
STORY : 왜 알코올 뺀 수면음료는 없을까요?
이수현 로맨시브 대표는 ‘음료’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경영학도(서울대 경영학과 휴학)였습니다. 그는 시장이 크고 구매 지불 의사가 높은 ‘주류’ 시장 창업에 도전할 생각이었는데요. 그러려면 우선 주류 시장을 알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이수현 로맨시브 대표는 학교를 휴학하고 바텐더 일을 하기로 결심했고요. 당연히 알코올, 논알코올을 막론하고 칵테일도 만들었지만요. 그것 이상으로 주류 소매업체와 연결된 뒷단의 가치사슬에서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창업의 힌트를 찾고자 한 목적이 컸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수현 대표는 2년 가까이 바텐더 일을 했는데요. 아쉽게도 폐쇄적인 주류 시장에서 원하는 사업 구상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바를 자주 찾는 손님들과 대화를 하면서, 의외의 힌트를 얻게 됐다고 하는데요. 이수현 대표에 따르면 바를 찾는 손님들 중에는 ‘잠이 안와서 술을 마신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참 많았고요. 사실 술꾼들은 체감상 술이 잠이 잘 오는데 도움이 된다고 공감하곤 하지만요. 조금만 연구 자료를 찾아보면 술은 수면의 질 측면에서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명지병원 수면센터에 따르면 알코올은 호흡중추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코골이나 수면 무호흡증을 일으키기도 하죠.
이수현 대표는 생각합니다. ‘왜 알코올을 뺀 수면음료는 없을까?’ 호기심에 찾아보니까 한국에선 아직 제품이 출시되지 않았지만요.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수면음료가 대중화된 모습이었습니다. 이수현 대표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 수면식품 시장은 1조5000억원에 달했고요. 이 중 수면음료는 4600억원 규모로 매년 23% 규모로 성장하고 있었죠.
미국에서는 이미 드림워터(Dream Water), 올리뉴트리션(OLLY Nutrition)과 같은 수면음료 및 수면식품 제조 스타트업이 각각 하베스트원(Harvest One), 유니레버(Unilever)에 매각하면서 투자 시장에서 가능성을 증명한 바 있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이 대표는 한국 또한 이러한 흐름이 곧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죠.
“처음엔 ‘알코올 뺀 수면음료는 왜 없을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접근했어요. 그런데 찾아보니까 이게 한국에만 없었지, 이미 있는 거예요. 수면산업은 선진국 순으로 오는 특성이 있는데, 미국과 일본을 거쳤다면 한국 또한 언젠가 반드시 올 트렌드라고 생각했고요. 그때 ‘수면음료’를 만들어야겠다 싶었습니다. 2020년 10월부터 수면음료 연구개발을 위한 스터디를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디어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2021년 6월 로맨시브 법인을 창업했죠”
- 이수현 로맨시브 대표
PRODUCT : R&D가 만만한 건 아닐 텐데요?
여기까지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났을지 모르겠습니다. 별다른 산업 경험이 없는, 경영학을 배운 대학생이 ‘생명과학’ 연구가 수반되는 R&D를 제대로 하는 것이 가능할지 말이죠. 흔히 커머스 셀러 창업을 생각하더라도 처음에는 구매대행이나 위탁판매를 통해서 무재고 판매를 해보고요. 이후 성장을 하면서 직매입 재고를 섞고, 공장 OEM을 통해 ‘브랜드’ 개발로 넘어가잖아요?
근데 로맨시브는 처음부터 가장 어려운 영역인 ‘기능성 음료’ 브랜드를 직접 개발하고, OEM 제조하여, 자사몰을 통해 판매하는 D2C(Direct to Customer) 프로세스를 설계한 것이거든요. 왜 이런 어려운 선택을 한 것일까요? 사실 이건 커넥터스가 이수현 대표에게 건넨 첫 번째 질문이기도 했는데요. 여기 이수현 대표는 “머릿속이 꽃밭이어서 시작했지만, 잘 알았다면 오히려 못했을 것 같다”고 답변하면서 이후 그가 겪은 험난한(?) 과정들을 전했습니다.
기능성 음료 개발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단연 ‘원료’고요. 이 대표는 먼저 불면증 개선이 입증된 SCI급 연구결과 및 임상연구 자료가 있는 논문을 전부 찾으며, 실제 불면증 해결에 도움이 되는 원료가 무엇인지 탐색했습니다. 여기 더해 시중에 불면증 개선을 위해 나온 선행 특허 71건을 검토했고요. 처음에는 ‘이렇게 찾은 원료 4~5개를 배합해서 음료를 만들면 되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료를 찾다보니까 조금 더 욕심이 생겼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유산균’과 ‘발효’가 불면증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언급됐기 때문인데요. 실제 이 대표의 조사에 따르면 불면증 상위 특허 12건 중 무려 5건(41.6%)이 발효와 유산균과 관련된 특허로 나타났고요. 유산균 섭취만으로 수면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유산균 발효를 통해 기존 원료의 불면증 개선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다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말인즉 수면제를 만들기 위해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멜라토닌’을 넘어서요. 허브와 같은 자연추출물, 나아가 유산균을 활용한 수면음료로 넘어가는 트렌드가 나타나지 않을까 이 대표는 생각했고요. 이 트렌드를 로맨시브가 개발하는 수면음료 제품에 반영하고자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대표의 이 생각은 이후 멜라토닌과 관련된 부작용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자연 원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적중했다죠.)
아이디어가 구체화됐기에,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이 대표의 생각을 검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원료를 배합하고, 그 결과를 증명하는 데는 전문 지식을 가진 연구원과 연구실의 도움이 필수적이라 판단했고요. 이후 소개를 받아서 서울대학교 기능성식품랩에서 일하던 연구원이자 식품 창업 경험이 있는 최주희 이사를 공동창업자로 영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로맨시브의 현장 박치기가 시작되는데요.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에서 ‘성분 분석’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식품대사체학 연구실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고요. 실험이 더 정밀하게 체계화될 수 있도록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실험을 거쳐서 2022년 1월 출시한 로맨시브의 첫 번째 제품이 수면음료 ‘리체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