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배달을 주문하거나, 거리를 오가던 중 외국인 배달 라이더를 마주친 적 있으신가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방을 중심으로 배달 라이더들 사이에서 목격담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는데요. 최근 들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외국인 라이더 수가 늘어났다는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외국인 거주자 비율이 높은 경기도 도시를 포함해, 저 역시 이번 주 서울시 강남, 마포 등지에서 외국인 라이더들과 마주쳤어요. 라이더들 말처럼 유심히 보면 보이더군요.
사실 배달 라이더로 일할 수 있는 외국인은 법적으로 매우 한정적입니다. 거주비자(F-2), 영주비자(F-5), 결혼이민비자(F-6)를 취득한 이들 정도만이 법적으로 배달 업무 수행이 가능하고요. 위 비자들은 취득이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법무부는 자국민 일자리 보호 취지에서 택배기사와 마찬가지로 배달 라이더로 일할 수 있는 외국인 비자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법이 정하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외국인 유학생이나 노동자는 한국에서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배달업계의 설명입니다. 지자체 차원에서 단속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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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국인 배달 라이더가 왕왕 눈에 띄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을 찾기 위해 커넥터스는 파키스탄 출신으로 전라남도 광주광역시에서 배달 라이더로 일하고 있는 A씨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2020년부터 국내 모 대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한 그는 일반 배달대행 사무실 소속으로 라이더 업무를 해왔고요. 이 일이 유학생에겐 더없이 좋은 일자리라고 설명했습니다.
“배달 라이더는 아주 기본적인 한국어 실력으로 일할 수 있는 최적의 업무입니다. 배달 사무실에서 제공하는 앱만 쓸 줄 알면 되거든요. 또 요즘은 문 앞에 음식을 두고 벨을 눌러 달라는 주문이 대부분이라 누구를 만나거나 대화할 일도 없고요. 배달 주소를 읽지 못해도 라이더 앱에 내장된 내비만 따라가면 됩니다. 대신 지방 고객들은 여전히 카드나 현금 결제 비율이 높기에, 이 정도 응대는 라이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겠죠?”
- 파키스탄 출신 5년차 유학생이자 배달 라이더 A씨
배달대행 업체 측면에서의 니즈 또한 존재합니다. A씨가 일하는 배달대행 사무실은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가 활동하는 지역은 수도권과 비교하여 배달 주문(콜) 숫자가 그리 많지 않고, 주문 밀집도 역시 떨어지기에 배달 효율이 영 좋지 않다고 합니다. 여기 배달 단가마저 수년째 그대로니 한국인 라이더들은 떠났고요. 그 자리를 유학생들이 채우기 시작했다고요.
이에 A씨가 소속된 배달대행 사무실은 업무 교육, 정산, 오토바이 대여 등 외국인 유학생들 맞춤형으로 신뢰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요. A씨 역시 본인이 속한 배달대행 사무실에 주변 다른 유학생을 소개해 준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심지어 방학이 되면 A씨와 친구들은 배달 주문이 많은 서울·경기 권역 배달대행 사무실을 소개받아 원정을 떠나기도 한다고요.
요컨대 인력난을 호소하는 배달대행 사무실 입장에선 외국인 유학생만큼 신분이 확실하고 성실한 파트너가 없고요. 상대적으로 한국에 비해 국민 소득이 낮은 국가에서 온 외국인 유학생들에게는 떨어진 배달 단가 역시 매력적으로 작용한다는 평가입니다. 물론 이들의 협력 구조가 합법적인 것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만, 서로의 니즈가 일치하는 만큼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첨언하자면 현재 외국인 라이더 고용은 배달대행 사무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등 배달 플랫폼에서 운영하는 라이더 앱이 불법적인 외국인 라이더 모집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예컨대 배민커넥트 가입은 적격 비자 없이는 불가능하고, 쿠팡이츠라이더는 아예 외국인 가입을 받지 않습니다.
배달대행과 배달앱 라이더의 상반된 감정선
흥미로운 것은 현장의 한국 라이더들이 외국인 라이더에게 느끼는 양가 감정이었습니다. 배달대행 사무실 소속 라이더들 사이에서 외국인 라이더들에 대한 평판은 과거에 비해 꽤나 좋아진 편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외국인 라이더들은 한국 라이더들이 ‘똥콜’이라 부르며 처리하길 꺼리는 장거리 저단가 콜, 상품 부피가 크고 무거운 편의점·마트 퀵커머스 콜을 기꺼이 담당한다는 평가를 받거든요. 서울 영등포구 배달대행 사무실에서 일하는 한 한국인 라이더는 ‘베트남 용병’이라 불리는 같은 사무실 소속 외국인 라이더에 대해 이렇게 평했습니다.
“베트남 용병 라이더 중에서 진짜 실력 있고 성실한 친구들은 하루 80~100콜까지 타요. 한 번에 10콜 묶음 배차까지 무난하게 처리하는데, 한국 라이더들은 그 절반도 못 타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이 친구들은 오토바이 운전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높은 데다 일반 배달대행사 특성상 한정된 배달 지역만을 커버하다 보니 점점 더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것 같아요. 거기다 똥콜도 안 가리고 잘 타주니까 동료 한국 라이더들이 얻는 편익도 있죠”
- 서울시 영등포구 일반 배달대행 사무실에서 베트남 출신 라이더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B씨
하지만 한 편에서 배민커넥트, 쿠팡이츠라이더 등 배달 플랫폼 앱에서 일하는 한국 라이더들 사이에서는 외국인 라이더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습니다. 엔데믹 이후 배달 수요가 감소하고 여기 더해 배민커넥트와 쿠팡이츠라이더가 최근 묶음배달 주문을 일반 배달대행사에 위탁하기 시작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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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라이더들이 본인들이 처리할 수 있는 배달 주문 숫자와 수익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고 느끼고 있는 와중에요. 앞서 설명한 이유로 외국인 라이더는 단가를 가리지 않고 콜을 잡는 편이다 보니, 전체 배달 평균 단가를 낮게 유지하는 데 한 몫 한다는 주장입니다.
한 편에서는 배달 플랫폼들이 이들 불법 외국인 라이더를 방치한다고 해석하는 라이더도 있었는데요. 물론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가 불법 외국인 라이더를 직접 채용하지는 않지만요. 이들이 외주를 준 배달대행 업체가 간접고용한 외국인 라이더를 통해서 똥콜이 빠지고, 배달 평균 단가가 떨어질 수 있는 만큼 사실상 플랫폼이 이득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달 플랫폼들 역시 수년간 배달 라이더 수급 불균형 문제와 이를 해소하기 위한 프로모션 비용 증가로 고민했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외국인 라이더를) 좋아할 수가 없죠. 보이는 족족 신고합니다. 무자격 외국인 라이더 고용은 명백히 불법이잖아요. 개인적으로 한국인 명의를 빌려서 일하는 외국인 라이더를 많이 봤고요. 심지어 면허증이 없거나, 번호판 없이 운행하는 외국인 라이더도 봤어요. 위험하죠. 당연히 보험도 없을 텐데.
그리고 이런 불법 라이더들이 저단가 콜까지 어떻게든 다 배달해 주니까 한국 라이더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못 받는 거예요. 플랫폼 묶음배달 하면 아직도 건당 2000원대 초중반을 받는데, 이게 5년 전, 10년 전과 비교해 얼마나 올랐습니까? 국밥 가격 2배 될 동안 배달 단가는 몇백원 올랐어요. 한국 라이더들이 계속 업계를 떠날 수밖에 없는 거죠”
- 서울시 강남구에서 활동하는 5년차 배달 라이더 C씨
가운데 불법 외국인 라이더 수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단속도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최근 광주출입국 외국인사무소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이어진 집중단속 기간에 불법 외국인 배달 라이더 78명을 적발했다고 밝혔습니다. 회색 지대를 달리는 외국인 라이더가 하나의 사회 문제로까지 번지는 모습인데요. 향후 배달시장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