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에 따르면 1분기 이후에도 쿠팡 실적에 파페치로 인한 ‘적자’는 크게 반영되 전망입니다. 쿠팡 경영진들은 2024년 성장사업 부문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조정 EBITDA 손실액을 종전 6.5억달러에서 7.5억달러로 1억달러 상향 조정했는데요. 증가한 예상 손실액은 쿠팡이츠, 대만 사업보다는 ‘파페치’의 영향 때문이라 설명했습니다. 이미 쿠팡은 파페치 인수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며, 올해 연말까지 파페치의 조정 EBITDA 손익을 ‘흑자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 쿠팡의 목표 중 하나라고도 언급했죠.
뜬금 ‘중국 플랫폼’이 튀어나온 이유
그렇다면 언론사들은 왜 뜬금없이 ‘중국 플랫폼’에 대한 대응 비용을 쿠팡 적자 전환을 포함한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을까요? 일단 여기까지 정리한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쿠팡의 위기는 위기가 아닙니다. 여전히 쿠팡은 잘 나가고 있으며, 심지어 이번 1분기 실적발표 질의응답에서 한 애널리스트(지옹 샤오, Barclays)는 “파페치 연결 공시로 혼란스러웠음에 불구하고, 매우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하며 질문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사들이 주장한 쿠팡 위기론과 이번 실적발표 사이의 연결점을 어떻게든 찾아보자면, 이번 1분기 실적발표에서 김범석 쿠팡 창업자 겸 CEO가 ‘중국 플랫폼’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점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 발언이 정말로 쿠팡의 위기론과 연결될 수 있는지는, 독자 여러분이 보고 판단하시죠.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의 부상은 커머스 업계의 진입장벽이 낮고, 소비자들이 불과 몇 초 안에 쇼핑 옵션을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고객은 매 구매마다 새로운 선택을 하며, 더 낫다고 생각되는 선택지에 돈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쿠팡은 매번 더 나은 최고의 구색(Selection)과 가격, 서비스를 제공함으로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향후 몇 년 동안 수십억 달러를 지속적으로 투자하여 주문 처리 및 물류 인프라를 강화할 것입니다. 시장 전반의 배송 속도를 높임은 물론, 외딴 섬과 산간벽지까지 빠른 무료 배송을 제공할 것입니다”
- 김범석 쿠팡 CEO, 2024년 1분기 쿠팡 실적발표 中
정리하자면 김범석 대표가 이번 실적발표에서 중국 플랫폼들을 언급하며, ‘투자 의지’를 밝힌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새로운 내용은 아닌 것이, 지난 3월 알려졌던 쿠팡의 3조원 물류 투자 계획의 연장이기 때문이고요. 결과적으로 중국 플랫폼의 공습으로 쿠팡이 위기감을 느껴, 투자를 늘린다는 해석을 못할 것은 없겠지만요. 본진인 프로덕트 커머스 매출과 이익, 고객 고착도 모두가 크게 성장한 상황에서, 이번 쿠팡의 적자가 중국 플랫폼 때문이라고 보는 건 명백한 ‘비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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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당면 위기는 중국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언론사들의 주장은 쿠팡이 싫어서(?), 어떻게든 쿠팡의 위기론을 만들고 싶은 의도였을 수도 있겠지만요. 사실 이번 위기론은 역설적으로 ‘쿠팡’의 의중이 반영돼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쿠팡 입장에서 ‘중국 플랫폼의 대항마’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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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쿠팡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이커머스 플랫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위 플랫폼이었던 네이버마저 거래액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그나마 남은 고객들마저 쿠팡으로 흡수되고 있고요. 대부분의 경쟁사들은 쿠팡과의 직접 경쟁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고, 사실상 ‘버티컬’ 영역으로 경쟁 전선을 분산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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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 앞으로 쿠팡의 성장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이 있다면 특정 경쟁사가 아니라, 혹여 찾아올지 모르는 정부의 규제입니다. 이미 쿠팡의 롤모델 아마존이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경험했던 ‘규제’의 파급을 쿠팡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요. 한국에서도 정부와 여야를 막론하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빅테크 규제’의 흐름을 쿠팡은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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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쿠팡을 타깃한 규제의 물결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최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이 자체 브랜드(PB)를 우대했다는 이유로 법인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요. 관련하여 국세청 등 세무 당국 역시 쿠팡과 관련 계열사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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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규제는 PB 등 쿠팡의 근본인 프로덕트 커머스의 핵심 사업을 건드리는 만큼, 쿠팡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규제를 막기 위한 ‘민의’를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와중 한국 기업의 혁신과 중소기업 생태계를 위협한다고 하는, 가뜩이나 한국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싫어하는 경향이 뚜렷한 ‘중국’ 플랫폼이 치고 오네요? 당장 중국 플랫폼은 쿠팡의 본원 비즈니스를 위협하기엔 너무나 약점이 뚜렷하지만요. 쿠팡에게 정부 규제를 막을 만한 명분을 만들어주기에는 충분합니다. 쿠팡에게 중소기업을 도우면서 중국 플랫폼의 침공을 방어하는 선두에 설 수 있다는 이미지가 만들어진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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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밖에 모르던 바보가 바뀌었다
실제 쿠팡이 실적발표 등지에서 강조하는 메시지는 과거와 비교하여 명확하게 바뀌었습니다. 이번 1분기 실적발표를 포함하여 흑자 전환 이후 쿠팡은 줄곧 시장을 지배하는 이커머스 1위 플랫폼이 아니라, 전체 소매시장에서 불과 ‘몇 %’의 점유율밖에 차지하지 못한, 아직 갈 길이 먼 작은(?) 사업자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고 있습니다. 그게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독점 규제에 대응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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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고객밖에 모르던 바보였던 쿠팡의 비즈니스 청사진에도 과거에는 잘 언급되지 않았던 이해관계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합니다. 바로 쿠팡 로켓배송에 상품을 공급하고 있는 제조 및 유통업체, 그리고 쿠팡 마켓플레이스에 입점한 셀러들인데요. 쿠팡 입장에서 이들과 ‘상생’한다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정부 규제 대응에 확연히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1분기 실적발표에서 김범석 CEO가 남긴 발언만 발췌해볼까요? 김범석 CEO는 쿠팡의 흑자를 만든 대표 서비스 로켓그로스(FLC, Fulfillment&Logistics by Coupang)의 1분기 기준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30% 증가했다고 하면서요. 동시에 80% 이상이 중소기업인 FLC 판매자들의 90일 이내 매출이 평균 2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중소기업들이 물류 인프라나 기술에 투자하지 않고도, 빠른 물류 서비스를 연결할 수 있는 ‘길’을 쿠팡이 만들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말이죠.
다른 예로 김범석 CEO는 최근 논란의 도마에 오른 PB 사업에 있어서도, 저렴한 가격의 PB 상품이 고객에게 혜택을 준다고 언급하면서요. 판매된 PB 상품의 거의 90%를 ‘중소기업’이 공급하도록 연결하여, 이들이 대형 제조업체와 경쟁할 수 있도록 쿠팡이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쿠팡에 따르면 2023년 130억달러 규모였던 ‘한국’에서 제조된 상품 판매 규모를 2024년 160억달러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도 이번 실적발표를 통해 언급했죠. 다분히 ‘중국’ 플랫폼과의 대항 구도를 의도한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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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김범석 CEO는 대만 사업에 있어서, 현지 고객의 상품 선택권을 넓혔다고 이야기하면서도요. 지난 한 해 동안 2만1000개 이상의 한국 상품 공급사들이 대만 시장에 제품을 수출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했고요. 로켓프레시를 설명하면서도, 산지의 농부와 어부의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도록 쿠팡이 지원했다고 전했습니다. 고객밖에 모르던 바보였던 쿠팡의 메시지에, 한국의 중소기업 파트너들이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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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2024년 고객 경험을 강화함은 물론, 제조 및 중소기업 파트너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확대할 것입니다. 쿠팡은 고객은 물론 이해관계자의 삶을 변화시키고, 모두가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 김범석 쿠팡 CEO, 2024년 1분기 쿠팡 실적발표 中
쿠팡의 이러한 메시지들은 명확하게 ‘관’을 향하고 있습니다. 뜬금 중국 플랫폼 발 쿠팡 위기론이 대두된 이유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정부 규제가 쿠팡 성장의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중국 플랫폼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 기업들의 성장을 지원하며, 심지어 ‘적자’를 보고 있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쿠팡은 만들고 있습니다.
덩달아 어쩌면 정부가 해야 할 일처럼 보이는 ‘산간벽지’까지 빠른 물류망을 깔겠다는 계획을, 굳이 중국 플랫폼을 거론하면서, 수조원의 비용을 투자하면서까지 하겠다고 쿠팡은 자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쿠팡이 소비자와 공급자 양측의 민의를 얻는다면, 규제 당국도 섣불리 쿠팡을 치기에 켕기는 부분이 생길 것입니다. 바로 지금 쿠팡이 ‘대관(對官)’에 진심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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