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그가 처음 사업을 시작한 해입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기 직전 스페인에서 식품을 수입하는 회사에서 해외 공급업체와 커뮤니케이션하는 업무를 맡았고요. 그 전에는 여행사에서 일하며 남미를 포함한 스페인어 문화권 국가에서 여행자들을 인솔하는 일을 했습니다. 자연스레 스페인 문화에 관심을 갖고 좋아했던 그는 스페인 상품을 수입해서 한국 바이어에게 판매하는 B2B 무역상이 되고 싶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꿈은 빠르게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역상이 되기엔 꽤 많은 자본금이 들어간다는 걸 간과했거든요. 스페인 현지 공급처로부터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선 컨테이너, 하다못해 최소 팔렛트 단위로는 상품을 들여와야 했는데요. 마땅한 국내 거래선이 없었던 그는 한국으로 수입한 재고를 어떻게 처분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당시 팬데믹이 촉발한 글로벌 공급망 병목으로 유럽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국제물류 운임이 폭발적으로 치솟은 것도 그의 부담을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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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결국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한국에서 수입한 상품을 받아줄 거래선을 찾기 보다는, 그가 스스로 수입한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역량을 먼저 기르고자 했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가장 부담 없이, 빠르게 시작할 수 있는 건 그가 ‘온라인 판매자’가 되는 길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앞서 이야기했던 현실적인 이슈로 곧바로 스페인 상품을 수입해서 한국에 판매하진 못했습니다. 그가 선택한 우회로는 ‘구매대행’이었고요. 당시 유행했던 중국 플랫폼에서 상품 데이터를 대량으로 끌고 와서 국내 플랫폼에 업로드하여 판매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한국 고객의 주문이 발생하면 이후 중국 플랫폼에 발주를 하여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글로벌 배송하면 되는 방식(‘드랍쉬핑’이라고도 부릅니다.)이기에 재고 매입 부담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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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해외 구매대행 사업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대량 등록을 한다는 것은 그가 무엇을 판매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고요. 이런 상황에서 인입되는 고객 CS 문의에 ‘확인하고 말씀 드리겠다’고 답하는 과정에서 자괴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해외 판매는 문제가 없지만, 한국 판매는 불법인 상품이 예기치 못하게 대량 등록으로 흘러 들어와서 곤혹스러웠던 적도 있었죠.
쿠팡과의 만남, 작은 성공
그러던 그는 한 판매자 대상 강의에서 구매대행 사업을 쿠팡 ‘로켓배송’ 직매입 납품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쿠팡과의 첫 만남이었죠. 그가 사업을 시작한 2021년만 하더라도 로켓배송 입점 요건은 그렇게 까다롭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하여 작은 판매자인 그도 제안만 한다면 문제없이 쿠팡은 상품을 받아주곤 했다고 합니다. 그는 중국 도매 플랫폼 ‘1688’에서 알아본 다양한 상품들을 쿠팡에 입점 제안했고요. 쿠팡이 수락한다면 이후 중국 플랫폼에서 재고를 매입하여 쿠팡 물류센터에 입고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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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그렇게 큰돈을 벌지 못했는데요. 그의 전성기는 2022년 쿠팡의 풀필먼트 사업 ‘로켓그로스’를 만나고 찾아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쿠팡이 로켓그로스를 본격화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인지라, 플랫폼 내 상품이 많지 않았고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잘 팔리던 상품들이 쿠팡에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때 그의 판매 전략은 네이버에서 잘 팔리는 상품 중 쿠팡에 없는 것을 발굴하여 ‘로켓그로스’에 집어넣는 것이었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2022년 12월경 4800만원의 월매출이 나오기도 했고요. 2023년 2월에는 순수익 기준으로 월간 1200만원이 넘는 성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처음 그가 꿈꿨던 사업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때부터는 쿠팡에서 만든 성공을 바탕으로 네이버, 지마켓, 옥션, 11번가, 티몬, 위메프, 올웨이즈, 토스, 롯데온 등 다양한 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하면서 상품을 전개하기도 했죠.
치열한 경쟁과 선택의 갈림길
하지만 작은 성공을 만든 와중에도 왠지 모를 불안감은 그의 마음을 스쳤습니다. 사실 그가 로켓그로스에서 성과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상술했듯 비교적 경쟁이 덜했던 초기에 시장에 진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쿠팡이 실적 발표를 통해 매 분기 언급했듯 ‘로켓그로스’는 파괴적인 성장을 계속했고요. 그렇게 늘어난 로켓그로스 판매자들 간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상품과 가격 경쟁력을 잃은 이들은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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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또한 치열한 경쟁 환경에 놓인 것은 매한가지였습니다. 그가 어떻게든 괜찮아 보이는 상품을 중국에서 소싱하여 팔더라도요. 어디선가 그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판매하는 사업자가 나타나 그의 자리를 위협했습니다. 심지어 이제 쿠팡은 그가 상품을 소싱하던 원청인 ‘중국 공급처’들을 직접 한국 로켓배송에 입점시키는 형태로 영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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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그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마진을 희생하면서 경쟁하던가, 아니면 다른 팔릴 만한 상품을 또 찾아내던가. 무엇이 됐든 그의 입장에서는 괴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초에 그가 소싱하여 쿠팡에 공급하던 상품들은 누구나 ‘중국 도매 플랫폼’에서 쉽게 소싱할 수 있는 것들이었고요. 어떻게든 잘 팔릴 상품을 찾더라도 새로운 경쟁자, 심지어 훨씬 더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중국 판매자들까지 뛰어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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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따르면 로켓그로스는 한 상품을 발굴하여 계속해서 키워나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그때그때 트렌드와 시장 경쟁 환경 변화에 맞춰서 새로운 상품을 계속해서 발굴해나가야 했고요. 더 좋은 상품으로 승부를 보는 구조가 아니라, 더 잘 팔릴 만한 상품을 계속해서 찾아가야 매출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구조는 그에게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줬습니다.
“로켓그로스 노출은 시기와 타이밍이 전략적으로 들어맞아야 합니다. 그래야 판매자의 마진도 어느 정도 남는 형태로 판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일시적이었습니다. 상품이 많이 팔리면, 경쟁 판매자들은 자연히 이 상품의 존재를 알아보고요. 더 낮은 가격으로 같은 상품을 시장에 집어넣습니다. 소비자들은 자연히 더 저렴한 상품을 살 것이고, 내가 발견한 상품은 도태되는 것이 반복됐습니다”
- 쿠팡 로켓그로스 판매자이자 명원담 한국 총판 세미님
‘브랜드’의 청운을 품다
그렇게 그는 조금씩 ‘브랜드’의 청운을 품게 됩니다. 쿠팡 로켓그로스 안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대체 불가능한 상품의 중요성을 몸으로 깨우쳤기 때문입니다. 운이 좋게 그의 주변에는 먼저 ‘브랜드’를 시작한 사업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의 소개를 받아서 그는 ‘명원담’이라는 홍삼 식품 브랜드의 자사몰 운영을 포함한 국내 온라인 총판을 맡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명원담 브랜드 자사몰 운영 목적의 법인을 설립했고, 작은 금액이지만 투자도 유치했습니다.
명원담은 홍삼 산지로 유명한 한국 금산에 공장을 두고 주로 해외 거래선에 B2B 납품을 하던 브랜드였습니다. 국내 B2C 판매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 온라인 판매로 성과를 만든 경험이 있는 그의 역량이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또한 처음부터 자체 브랜드를 전개하긴 상품기획 경험과 제조, 물류 등 비용 측면의 부담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브랜드 판매와 마케팅을 경험한다는 측면에서 명원담을 파트너로 맞이했습니다.
물론 명원담이 국내에서 잘 알려진 유명한 브랜드는 아니었기 때문에 고민도 따랐다고 합니다. 특히 트래픽과 광고 도구와 같은 플랫폼의 자산을 매출 증대에 이용할 수 있는 로켓그로스 입점과 다르게 ‘자사몰’은 말 그대로 백지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자사몰 디자인부터 상품 콘텐츠 제작, 마케팅을 모두 스스로 해야 했고, 이에 대한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죠. 그럼에도 장기적으로 플랫폼 정책에 휘둘리지 않고 ‘내 고객’이 남을 걸 기대하면서 마케팅 투자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결국 그의 브랜드를 만들 그 날을 기다리면서 말이죠.
“명원담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신생 브랜드이기에, 기존 인지도가 높은 경쟁 제품과 비교하여 차별성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홍삼이나 녹용 제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건강’ 측면에서 개선되길 원하고 기대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저희는 홍삼과 녹용 원료 흡수율을 높이는 특허 받은 유산균 발효 기술을 제품에 적용했고요. 최근 제품 리뉴얼 과정에선 홍삼 흡수율을 크게 향상시키는 ‘컴파운드K’ 함량을 높였습니다.
올라간 원가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는 기존과 동일하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실제로 저희가 적용한 기술 대비 제품 가격은 굉장히 저렴하다고 자부합니다. 시장 1위 홍삼 브랜드는 30만원대에 판매하는 제품을 저희는 15만원대에 팔고, 홍삼과 녹용 흡수율을 높이는 유산균 발효 특허 기술도 들어간 것이니까요”
- 쿠팡 로켓그로스 판매자이자 명원담 한국 총판 세미님
세미님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판매자들의 도전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세미님이 쿠팡 로켓그로스에서 겪었다고 이야기했던 많은 일들은 사실 그 이전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수많은 판매자들이 펼쳤던 경쟁과도 유사하고요. 우리는 그 과정에서 스러진, 그리고 그 중에서도 살아남은 판매자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존과 성장 방정식은 결국 ‘브랜드’라는 키워드로 귀결됩니다. 오늘 정리한 세미님의 도전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지금도 브랜드가 되기 위한 도전을 펼쳐는 많은 이들을 커넥터스는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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