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하나를 성공시켰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요? 브랜드를 더욱 성장시키는 데 집중할까요? 요즘 스타트업 업계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멀티 브랜드 빌더입니다”
젝시믹스를 만든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 마르디 메크르디의 피스피스스튜디오, 마뗑킴의 하고하우스, 랩노쉬의 이그니스까지. 이들은 하나의 브랜드에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브랜드를 만들고 또 다른 시장을 개척하며 ‘브랜드 R&D’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에 진출하고, 흑자 경영을 이어가며 지속가능성을 증명해내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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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질문이 생깁니다. 수천억 원 매출의 브랜드 빌더들이 이토록 늘어났다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 아닌가요?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브랜드 빌더가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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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알토스벤처스로부터 약 70억 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한 ‘비플랜트’ 역시 스스로를 브랜드 빌더라 소개합니다. 이 회사는 MBC 아나운서 출신 김소영 대표가 운영하던 인스타그램 공동구매 기반의 편집숍 ‘브론테샵’에서 출발했습니다. 이후 2024년 헬스케어 브랜드 ‘세렌(Scerene)’과 스킨케어 브랜드 ‘커브드(Kurved)’를 잇따라 론칭하며 자신만의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가고 있죠.
아직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성장세는 인상적입니다. 비플랜트는 2024년 기준 약 10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요. 이는 전년(61억 원) 대비 69% 증가한 수치입니다. 같은 해 영업이익은 27억 원으로, 수익성 역시 눈에 띕니다. 알토스벤처스가 투자한 배경엔 비플랜트의 성장성과 수익성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 확장 가능성’도 작용했습니다. 실제로 비플랜트는 최근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해 3PL 파트너를 물색하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비플랜트는 인플루언서 커머스를 기반으로 시작했지만, 브랜드 설계력과 제품 완성도, 고객 리텐션까지 고려할 때 지속 성장 가능성이 높은 팀입니다. 또한 창업자가 고객 취향을 잘 이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브랜드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진정성과 실행력을 동시에 갖췄습니다. 이런 역량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이번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 알토스벤처스 보도자료 발췌
브랜드는 여러 개지만, 물류는 ‘하나’
그런데 흥미로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커넥터스가 만난 여러 브랜드 빌더의 물류 실무자들은, 각기 다른 회사에 속해 있으면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입니다. 바로 ‘물류 통합’이죠”
브랜드 빌더의 마케팅 전략은 ‘각개전투’에 가깝습니다. 식품, 뷰티, 패션처럼 완전히 다른 카테고리를 운영하고, 타깃 고객도 다릅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보지 못하는 뒷단, 운영 체계는 철저히 통합을 지향합니다. 처음에는 외부 3PL에 물류를 위탁하더라도, 일정 규모 이상 성장하면 자사 물류 시스템을 갖추고, 모든 브랜드의 운영을 한데 모아 ‘물량 기반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는 것이죠.
“고객 눈에 보이는 브랜드는 여러 개지만, 운영 시스템은 하나입니다. 신규 브랜드를 만들 때도 기존 브랜드에서 쌓은 물량과 단가 협상력, 운영 노하우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요. 그 자체가 진입장벽이 되고, 동종 카테고리 경쟁 브랜드와 비교하여 시작점이 다른 경쟁력을 만들어줍니다”
- 수천억원 매출의 브랜드 빌더 회사 물류 담당자 A씨
사실 이 전략이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닙니다. P&G와 유니레버처럼 수십 개 브랜드를 하나의 SCM(Supply Chain Management) 시스템으로 묶어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은 이미 존재합니다. 질레트, 오랄비, 타이드, 도브, 바세린, 립톤... 회사의 이름보다 유명한 브랜드를 여럿 보유한 이 기업들은, 공급망 통합을 통해 효율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두 기업은 글로벌 공급망 관리 분야에서 ‘마스터’ 등급을 보유한 몇 안되는 기업들이기도 합니다. 가트너가 선정한 이 리스트엔 최근 10년 중 7년 이상 상위 5위 안에 올라야만 이름을 올릴 수 있으며, 2025년 기준 이 자리에 오른 기업은 단 4곳. 아마존, 애플, P&G, 그리고 유니레버뿐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공급망관리를 잘한다고 평가받는 기업들이죠.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바로 지금 한국에서 브랜드 빌더 모델이 각광받는 이유에 대해서입니다. 바로 K컬처 열풍과 글로벌 소비자의 수요 증가,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맞물렸기 때문입니다. 오징어게임, 케이팝데몬헌터스 등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한국 브랜드에 대한 수요 역시 커졌습니다. 이 기회를 붙잡기 위한 ‘빠른 침투 전략’이 필요해졌고, 빠르게 브랜드를 설계하고 유통하는 역량이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 열풍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핵심 역량은 결국 ‘물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거대한 물동량 성장을 뒷받침할 만큼의 공급망관리 역량이 부족하다면, 서비스 품질이 무너지고, 고객 신뢰도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결국 장기적으로 경쟁 브랜드에 대응하기 위한 원가 경쟁력 역시 공급망관리 역량에서 나오니까요. 우리는 그 변화의 초입에 있고, 어쩌면 한국에서도 P&G와 유니레버 같은 ‘물류를 잘하는 기업’이 탄생할 기회를 보고 있는지 모릅니다.
“전 세계적인 한국 문화 콘텐츠의 흥행은 그 자체로 거대한 기회입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생각에 글로벌 진출을 서두르고 있어요.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두려움도 있지만, 우리에게 시간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성장 단계에 따라서 더 많은 물류 전문가들이 우리 조직에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 수백억 매출 브랜드 빌더 물류 담당자 B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