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쿠팡은 기존 강한승, 박대준 각자대표 체제에서 박대준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을 발표했습니다. 그전까지 신사업 부문을 맡아왔던 박대준 대표는 이제 쿠팡의 경영 전반을 총괄하게 됐는데요. 쿠팡은 이번 단독대표 선임 인사를 통해 “전국 쿠세권(쿠팡 빠른 배송 권역) 확장과 소상공인 판로를 더 강화할 방침”이라 전했습니다.
박대준 대표는 ‘대관(對官) 통’입니다. LG전자, 네이버 등에서 대외협력, 정책 담당 실무자로 일하다가, 2012년 쿠팡에 정책실장으로 합류했는데요. 2019년 정책 담당 부사장을 거쳐, 2020년 쿠팡의 신사업 부문 대표로 선임됐습니다. 대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신사업 총괄이 됐다는 것은, 그만큼 쿠팡이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기관과의 관계 구축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방증입니다. (참고로 박대준 대표와 함께 경영관리 총괄 각자대표로 선임됐던 강한승 전임 대표는 김앤장 변호사로 활동하기도 했던 법률가 출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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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전북대학교에서 열렸던 ‘쿠팡 와우 스테이지 in 전북’은 박대준 대표가 취임 이후 대중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공개 행보이기도 합니다. 박 대표가 스스로 밝히길 ‘정말 바쁜 시기임에 불구하고’ 전라북도 전주까지 내려온 이유는 있었고, 이제 단독 대표가 된 그가 여기서 강조한 메시지는 곧 쿠팡이 국내 사업에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뜻합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 : 왜 전북에서 시작하나
박 대표는 행사 축사를 통해 “단독 대표 취임 이후 큰 테마 중 하나로 잡은 것이 지역 경제 활성화, 그리고 청년 창업이고 이 부분은 진심”이라며 “그중 특히 청년 창업 지원을 하나의 큰 축으로 저의 미션을 정했고, 전북에서 그 첫 번째 행사를 연다”고 취지를 밝혔습니다.
왜 전라북도인가. 사실 박 대표에게 전북은 ‘아픈 손가락’ 같았다고 합니다. 박 대표의 기억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2년 반 전 전북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판매자, 공급자 등을 비롯한 전북 협력 사업자들이 쿠팡에서 기여하는 매출이 대략 3000~4000억 원밖에 되지 않았다고 회상합니다. 이는 도 단위로 본다면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치였다고요.
당시 그는 이 숫자를 ‘1조원’까지 끌어올리자는 목표를 세웠다고 하는데요. 이번 행사 참가차 내려오면서 확인해 보니, 현재 6500개 정도의 전북 협력 사업자들이 만들어 내는 연매출은 6000억원 수준으로 파악됐다고 합니다. 아직 1조원 성과는 달성하지 못했고, 그래서 더 잘해보기 위해 전북에 방문했다는 거죠.
“묘하게 전북에서 다시 시작해 보고 싶었습니다. 다른 지역은 초과 달성한 곳도 많고, 활성화도 많이 됐는데 전북은 이상하게 약간 아픈 손가락 같아서요. 아직도 목표 달성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잘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많은 아이디어도 얻고 싶습니다”
박대준 쿠팡 대표
청년 창업 : 단계별 성장 시스템을 활용한다면
박 대표가 강조했던 지역 경제 활성화와 청년 창업은 사실 하나의 메시지나 다름없습니다. 지역 청년 창업이 많아지고, 이중 성장하는 기업이 늘어난다면, 자연스럽게 지역의 일자리도 늘어나고 그들이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부분도 커지게 됩니다. 이미 쿠팡 물류센터가 지자체들 사이에서 ‘일자리 창출’ 효과를 톡톡히 만든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단순히 일자리 창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물류센터 인근 배후 단지의 성장을 함께 만들기도 하는 것처럼요.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시 지역에서 소비를 하니까요.
물론 박 대표가 강조했던 ‘청년 창업’의 의미가 이 물류센터에 취업하라는 뜻은 아니고요. 쿠팡은 단순히 플랫폼에 상품을 올려 팔 수 있는 마켓플레이스 아이템마켓(3P)부터 쿠팡의 물류까지 이용하는 로켓그로스(2P), 쿠팡이 직접 공급자의 상품을 매입하는 단계인 로켓배송(1P)까지 단계별 성장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지역 창업자들이 이를 적극 활용하길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전라북도 창업가들과 하고 싶은 것은 굉장히 많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커머스 쪽에 많은 지원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창업가들은 쿠팡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할 수 있습니다. 제일 처음에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낮은 위험부담으로 3P 오픈마켓(마켓플레이스)에 들어와서 본인의 서비스나 상품을 테스트해 보는 것이고요.
다음으로 저희가 2P 시스템이라 부르는 로켓그로스는 쿠팡이 전국에 구축한 물류 인프라를 판매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입니다. 쿠팡에서는 상품 노출에 있어서 배송이 얼마나 빠르냐가 굉장히 중요한데요. 로켓그로스를 이용한다면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속도를 만들 수 있고, 심지어 CS까지 우리가 처리해 줍니다.
그렇게 또 성장하면서 제품이 매력적이라면, 이제 우리가 연락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회사에서 MD(머천다이저)라 불리는 직군을 우리는 BM(Brand Manager)이라 칭하는데요. BM들이 ‘사장님 1P 직매입 해보실 생각 없냐’면서 거꾸로 제안할 겁니다. 이때부터는 쿠팡이 해당 상품을 대량 매입하는데, 그 정도 되면 조금 튕겨도 됩니다. 저는 이렇게 성장의 사다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박대준 쿠팡 대표
박 대표에 따르면 ‘로켓그로스’는 그 이름처럼 이미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룩한 기업보다는, 앞으로 성장할 여지가 큰 기업들이 이용하기 적합한 서비스로 기획됐습니다. 하나 기획 취지와 다르게 대기업 브랜드들도 로켓그로스를 사용하고, 이걸 막으니 외주 업체를 이용하여 자신의 제품을 우회 입점시키는 추이가 보였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쿠팡 입장에서 이런 행태를 원천 차단하기는 어려우나, 지방의 작은 기업과 청년 기업들에게는 입점 가산점 및 우선권을 주도록 했고요. 전북의 판매자, 브랜드들도 이를 적극 활용하길 바란다는 의중을 전했습니다.
글로벌 진출 : 항공모함에 탑승할 함재기를 찾습니다
박 대표가 제시한 성장의 최종 목표는 ‘글로벌 진출’입니다. 쿠팡은 자사가 직매입한 상품을 중심으로 대만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된다면 쿠팡 로켓배송에 입점한 브랜드, 판매자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까지 자연스럽게 공략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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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쿠팡이 거대한 ‘항공모함’을 만들고 있다고 비유했습니다. 박 대표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에서 항공모함의 등장은 해전의 양상을 바꿨습니다. 전함끼리 포를 쏘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요. 전함에 탑재한 함재기들이 공중에서 적을 공격하니, 이에 대항할 수단이 없는 적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이 만들었던 초거대 전함 야마토함은 그렇게 전공 하나 세우지 못하고, 항공기들의 공격을 받아 바닷속에 침몰했죠.
박 대표에 따르면 쿠팡이 만들고 있는 항공모함은 일종의 ‘수출 파이프라인’입니다. 쿠팡이 최근 실적발표에서 처음 공개한 것처럼 대만 사업의 성장 속도가 한국 로켓배송 초기 성장 속도보다 더 빠르고요. 퀵커머스 사업에선 철수했던 일본도 ‘음식배달’ 영역에서 다시 재도전을 시작했습니다. 한국과 출발점은 다르더라도 일본 음식배달로 서비스를 확장하여 만든 고객 트래픽을 ‘커머스’ 재진출의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쿠팡은 보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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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야 지금 로켓배송이다, 당일배송이다, 새벽배송이다 굉장히 익숙한데요. 대만은 아직도 3일 후, 일주일 후에 도착하곤 합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로켓배송 방식으로 들어가니까 그들에겐 마법처럼 보이는 것이죠. 그리고 한국 제품에 대한 호감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박대준 쿠팡 대표
박 대표는 “항공모함은 이미 건조했고, 자신감을 가질만 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여기 필요한 것은 바로 항공모함에 탑승할 함재기, 그러니까 ‘지역의 창업가’들이라고 했습니다. 박 대표의 예시에 따르면 김포의 가정주부가 아이디어 상품으로 만든 ‘뽑아 쓰는 코팩’이 대만에서 대박이 났습니다. 유명 화장품 회사가 만든 것도 아니었는데, 지금 김포에서 공장 설비를 증설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것이 박 대표가 전한 의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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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바다 건너에 있습니다. 우리가 경쟁해야 될 대상이죠. 미국이 있고, 가까이 중국이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미국이, 커머스와 관련해서는 특히 제조업 물량을 들고 중국이 들어올텐데요. 언제까지 지키기만 해야 할까요? 우리도 밀고 나가야 됩니다.
이를 위한 항공모함은 건조했습니다. 그 항공모함에 여러분들이 같이 타서 우리도 공격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방어만 그만하고요.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온 것은 그런 아이디어를 여러분들과 같이 나눠보기 위해서입니다. 못 찾으면 다음에 한 번 더 내려오겠습니다”
박대준 쿠팡 대표
참고로 ‘in 전북’이라는 타이틀에서 예상했겠지만, 쿠팡은 ‘와우 스테이지’를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다음 개최지로도 지방 도시 하나가 특정이 됐는데요. 같은 행보를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지역 활성화’와 ‘판매자, 브랜드로 대표되는 창업가와의 동반 성장’을 강조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여기까지 살펴본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사실 여전히 쿠팡을 둘러싼 외부 파트너들 사이의 파열음은 왕왕 들려오고 있습니다. 당장 이 글을 준비하면서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 로켓그로스 입점 판매자의 제보를 받았는데요. 쿠팡이 진정 SME와의 동반 성장을 추구하길 희망한다면, 이런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희는 이런 소식 또한 계속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