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택배를 보내본 분이라면 한 번쯤 이상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도내에서 보낸 택배가, 육지를 거쳐 다시 제주도로 돌아오는 상황 말입니다. 이는 전국 화물을 대형 허브터미널에 모아 분류한 뒤 다시 각 지역으로 흩뿌려 배송하는 택배의 ‘허브앤스포크(Hub & Spoke)’ 구조 때문인데요. 도선으로 화물차가 오가는 섬이라는 특수성까지 더해지며, 제주도에서 제주도까지 보낸 택배가 수령까지 3박 4일 이상이 걸리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건 특히 지역 자영업자에게 뼈아픈 문제로 꼽혔습니다. 제주도에서 음식점 장사를 하려면 아침에 손질한 회나 식재료를 가게에 들여놓아야 하는데, 택배로는 시간을 맞추기 어려우니까요. 결국 직접 차를 몰아서 물건을 사오거나, 퀵서비스를 써야 하는데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이 문제를 색다른 방식으로 해결한 회사가 있습니다. AI 배차 엔진과 TMS(Transportation Management System) 개발사 위밋모빌리티인데요. 이들은 과거부터 물류센터가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제주에 ‘창고 없이 당일배송이 가능한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그들이 고안한 방식은 V2V(Vehicle to Vehicle). 즉 차량끼리 중간에서 만나 물건을 주고받는 모델이었습니다.
화물차가 곧 창고가 되는 실험
위밋모빌리티는 2023년 9월부터 약 2년 간 제주에서 ‘제주오늘’이라는 실증 서비스를 제주로지스틱스와 협력하여 운영했습니다. 위밋모빌리티의 핵심 기술인 ‘실시간 라우팅(Routing)’을 제주도내 당일배송 서비스에 적용한 건데요. 차량을 권역별로 풀어놓고, 들어오는 주문을 가장 가까운 차량이 즉시 수거합니다. 마치 음식배달 기사가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주문을 잡는 구조와 유사하죠.
그 다음엔 차량들이 정해진 시간에 모여 중간 분류 과정을 거칩니다. 일종의 ‘로컬 허브앤스포크’를 차량간 물량 교환 방식(V2V)을 활용하여 구현한 셈이죠. 기존 택배처럼 육지 허브터미널을 오가는 경유를 없앴고, 제주 안에서만 도는 네트워크로 시간을 단축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주 동북쪽 함덕에서 서남쪽 중문까지 한 차량만을 단독으로 운행한다면 비효율이 큽니다. 하지만 출발지 근처 차량이 물건을 받아 중간 지점 주유소나 주차장에서 다른 차량에 넘기고, 최종 목적지 근처 차량이 이어받는다면 효율은 극대화됩니다.
이 방식은 육지 택배 기사들이 권역 간 물량을 교환하는 구조(아래 커넥터스 콘텐츠 링크 참조)와도 유사합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위밋모빌리티의 시스템은 “몇 시에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이 아니라, 데이터와 소프트웨어가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점입니다. 지금 가장 가까운 차량이 누구인지, 어떤 지점에서 교환하는 게 최적일지, 특정 권역의 밀도를 어떻게 분산할지 시스템이 판단해 실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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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오늘’은 오전 11시 30분 컷오프까지 들어온 주문은 그날 오후 안에 도착하는 구조로 운영됩니다. 컷오프 이후 들어온 주문은 다음날 배송되죠. 위밋모빌리티는 이 서비스를 위해서 자체 화물차량을 7대 정도 운영했고, 차량 한 대는 하루에 40~50건 정도의 물량을 배송했습니다. 만약 물량이 늘어난다면 외부 차량을 투입하여 최대 20대 정도의 차량을 운영하기도 했죠.
이 과정에서 창고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차량이 곧 창고가 되고, 도로 위 만남이 허브가 됐습니다. 이 방식의 핵심은 이를 택배기사 간 ‘몇 시에 어디서 만나 물량을 교환하자’는 약속이 아니라, 데이터와 시스템에 근거해서 운영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가장 가까운 차량은 누구인지, 어떤 지점에서 교환하는 게 최적일지, 특정 권역의 밀도를 어떻게 분산할지 모든 결정은 소프트웨어가 즉각 내립니다. 덕분에 화물차는 택시처럼 유연하게 움직이고, 목적지까지 당일 도착도 완성할 수 있는 거죠.
SaaS 솔루션 업체가 뜬금 당일배송을 한 이유
강귀선 위밋모빌리티 대표는 커넥터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1년여간 서비스 실증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고도화했고, V2V 모델을 제주에서만 쓸 것이 아니라 SaaS 솔루션으로 만들어 내륙 운송사에도 공급할 생각”이라고요.
즉, 제주라는 특수 지역에서 검증된 모델을 SaaS(Software as a Service) 솔루션으로 상품화해 내륙 운송사와 제조사에게도 열어주겠다는 전략입니다. 바로 여기서 물류 시스템 업체인 위밋모빌리티가, ‘제주 당일배송’을 실험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솔루션 고도화를 위해 직접 운영을 테스트한 것입니다. 창고 투자에 필요한 막대한 고정비에 부담을 느끼는 기업들에게는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이와 같은 V2V 물류 실험은 위밋모빌리티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물류기업들 사이에서 있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일반화’ 되지 못했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죠. 권역을 이동할 만큼 충분한 물량이 발생해야 하고, 예기치 못한 여러 이슈로 차량 간 교환 지점에서 대기가 발생함에 따라 전체적인 물류 효율이 저하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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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제주에서 위밋모빌리티가 진행한 V2V 물류 실험은 하나의 가능성을 증명했습니다. 하루 수십 건의 배송이 안정적으로 이뤄졌고, 배송 비용은 퀵서비스 대비 크게 낮아졌으며, 시스템은 점점 더 고도화됐습니다.
우리는 흔히 물류 혁신이라고 하면 거대한 자동화 창고나 로봇 설비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위밋모빌리티의 실험은 그 반대편에서 출발했습니다. “아예 창고 없이, 차량만으로도 빠른 배송이 가능하다”는 접근이죠. ‘창고 없는 물류망’은 정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단순명료한 이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분명 고도화된 기술 역량이 필요할 것이 자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