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이야기는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챗GPT의 등장 이후, 수많은 생성형 AI 도구들이 쏟아졌고, 누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AI를 만나는 시대가 됐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업계에서 유난히 자주 들리는 새로운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에이전틱(Agentic) AI’입니다. 얼마 전에 열렸던 삼성SDS의 기술 행사(REAL Summit 2025)에도 핵심 주제로 언급됐고, 다음 주에 열릴 카카오의 기술 행사(if kakao 25)에서도 이 개념이 비중 있게 언급됩니다.
무슨 말일까요? 기존 AI 어시스턴트는 ‘똑똑한 검색 도우미’에 가까웠습니다. 사용자가 질문을 던지면 관련 정보를 빠르게 모아 답을 주는 역할이었죠. 추가로 궁금한 것이 있다면 다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에이전틱 AI는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말 그대로 비서처럼 스스로 정보를 모으고, 최적의 해법을 찾아 제시하며, 필요하다면 업무까지 대신 처리합니다.
이준희 삼성SDS 대표는 지난 9일 열렸던 리얼 서밋 2025 기조연설에서 좀 더 직관적인 예를 들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기존 AI 어시스턴트를 통해 항공권을 예약한다면 무엇인가 사용자가 계속해서 AI가 요구하는 필요한 정보를 입력해야 했다면요. AI 에이전트는 단 한 번의 요청만으로 사용자의 일정, 과거 이용 내역, 선호도 등을 종합해 가장 적합한 항공편 솔루션을 제시한다고요.
이 대표가 제시한 예시가 사실이라면, 장차 수많은 AI 에이전트들이 서로 협업하여 심지어 사람의 개입 없이도 일을 하는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요. 그렇다면 IT보다 물류사업 매출이 높은 IT 기업 삼성SDS는 이 ‘에이전틱 AI’를 물류에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꿈꾸고 있었습니다.
물류 AI의 현재 : 분석형과 생성형
삼성SDS가 지금 물류 현장에서 활용하는 AI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분석형(Analytical) AI와 생성형(Generative) AI. 이름은 거창하지만, 역할을 나눠보면 단순합니다. 공통점은 둘 다 방대한 데이터가 있어야만 제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입니다.
김성곤 삼성SDS 첼로스퀘어 운영팀 상무는 “AI를 더 AI답게 만드는 핵심은 결국 데이터”라고 말했습니다. 물류 현장에서 수집되는 주문, 선적, 통관, 트래킹, 창고와 라스트마일 배송까지. 운영 데이터가 끊임없이 쌓이고 정제돼야만 AI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겁니다.
① 분석형 AI
삼성SDS는 생성형 AI가 화제가 되기 한참 전부터 ‘분석형 AI’를 먼저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삼성SDS에 따르면 분석형 AI의 강점은 ‘정확성’과 ‘신뢰성’입니다. 예측, 최적화, 시뮬레이션 같은 영역에서 특히 빛을 발하죠. 예컨대 컨테이너에 들어갈 물량을 최적화하여 비용을 절감한다거나, 선박의 출도착 시점(ETA, ETD)을 예측한다거나 하는 분석이 AI를 통해 가능하고 이미 진행 중입니다.
실제 사례를 보겠습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가 큰 화제가 됐죠.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은 관세 영향이 큰 중국을 떠나 자국으로 생산 공장을 옮기는 ‘리쇼어링(Re-shoring)’, 혹은 소비지 인접 국가로 생산 공장을 옮기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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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완제품 공장을 북미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그나마 의사결정 하기가 용이한데요. 여기 자재를 공급하는 공급사 전체를 끌고 같이 이동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자재를 납품하는 70여 개 공급사들이 여전히 중국에 있고, 이를 미국으로 옮기는 자재 물류를 삼성SDS가 맡아 처리하고 있거든요.
삼성SDS가 이 70여개 공급사로부터 중국 항구를 거쳐 미국으로 운송되는 전체 물동 현황을 살펴보니 전체 운송량의 약 79% 정도가 20피트 컨테이너를 사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적재율은 60%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보통 20피트 컨테이너 운임은 40피트 컨테이너 운임의 60~80% 수준인데요. 바꿔 말하면 20피트 컨테이너를 40피트 컨테이너로 전환하여 사용한다면, 동시에 컨테이너 적재율은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다면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 이 계산은 쉽지 않습니다. 70여 개 공급사들이 다루는 자재 종류만 해도 수만 개에 달하고, 이들의 물성(부피, 무게, 민감도 등 화물의 특성)도 제각각입니다. 하나의 항구에서 마지막 목적지까지 가는 경로도 여러 개가 존재합니다.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기에, 사람의 힘만으로 계산하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삼성SDS는 이를 과거 1년치 데이터를 활용하여 해결했습니다. 패턴을 분석하고,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해서 20피트를 40피트 컨테이너로 합짐을 하는 혼재(Consolidation)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체 컨테이너 숫자를 약 15% 줄이고, 연간 물류비를 23% 절감했습니다.
예측의 영역에서도 분석형 AI는 차이를 만듭니다. 삼성SDS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선사가 제공하는 ETA(도착 예정 시간, Estimated Time of Arrival)는 평균 정확도가 60%도 되지 않습니다. 항구 혼잡, 파업, 기상악화, 해적 등 여러 이유로 선박이 특정 항구를 건너뛰고 바로 다음 항구로 이동하는 포트 스킵(Port Skip) 같은 돌발 변수도 수시로 생깁니다.
이때 삼성SDS는 과거 항적, 도착지까지 소요 시간, 항구 혼잡도, 평균 체류 시간 등을 학습한 머신러닝 모델로 예측(Predictive) ETA 및 ETD(출발 예정 시간, Estimated Time of Departure)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습니다. 선사가 제공하는 정보와 삼성SDS가 예측한 정보를 비교하여, 더 늦어질 가능성이 보인다면 고객과 즉시 협의해 백업 플랜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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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생성형 AI
분석형 AI가 ‘정확한 계산기’라면, 생성형 AI는 ‘손이 열 개 달린 비서’에 가깝습니다. 데이터 추출, 문서 처리, 리스크 감지, 보고서 작성 등 그동안 실무자들이 손으로 붙잡고 씨름하던 일들을 빠르게 자동화합니다. 삼성SDS는 이렇게 단순 반복을 없애 운영자들이 더 전략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첫 번째 영역은 데이터 자동 추출과 문서 처리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고객이 2025년 1월부터 3월까지 부산항에서 롱비치항까지 이동한 40피트 컨테이너 물동량을 요청했다고 해보죠. 과거라면 담당자가 직접 시스템을 조회하고, 시스템상 열람이 불가하다면 IT 부서에 협력까지 구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자연어로 “25년 1월부터 3월까지 부산–롱비치 40피트 물동량 A사 제품 전체를 뽑아줘”라고 요청하면, 생성형 AI가 조건에 맞는 데이터를 추출해 파일로 전달합니다. 담당자는 그 파일만 확인해 고객에게 전송하면 끝입니다. 번거로웠던 이전 단계를 건너뛴 거죠.
선적 서류 처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OCR(광학 문서 인식) 기술은 정확도가 낮아 현장에서 외면받았습니다. 하지만 최신 AI OCR은 99% 이상의 신뢰도를 확보했다는 게 삼성SDS의 설명입니다. 수기 혹은 전자 문서를 업로드 하면 상품의 무게, 부피(CBM), 수량이 자동 추출돼 시스템에 입력됩니다. 담당자들이 문서를 붙잡고 씨름하던 업무들이 상당량 간소화된 것입니다.
두 번째 영역은 리스크 감지와 대응입니다. 삼성SDS는 매일 전 세계에서 수십만 건의 물류 뉴스를 AI로 수집하고, 그중 수백 건의 위험 이벤트를 걸러냅니다. 위험도가 높은 사건은 즉시 분류해 알람을 띄우죠.
실제 사례가 있습니다. 최근 미국 롱비치항에서 선박 하역 중 컨테이너 수십 개가 바다로 추락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AI는 이를 실시간 뉴스를 통해 감지했습니다. 바다에 떨어진 화물 손상뿐 아니라, 주변 터미널 정체까지 유발할 수 있는 1급 위험으로 분류된 겁니다. 과거 같으면 담당자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갔을 수도 있는 사고가, 이제는 자동으로 걸러진 셈입니다.
요컨대 분석형 AI가 물류의 ‘계산력’을 키웠다면, 생성형 AI는 현장의 ‘손발’을 대신합니다. 계산만 잘해선 일이 굴러가지 않으니까요. 두 AI는 따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분석형 AI가 만든 정교한 데이터 기반 위에, 생성형 AI가 실무 효율화를 얹는 구조입니다. 결국 데이터의 양과 질이 쌓일수록 두 AI는 함께 진화하며 물류 운영 방식을 근본부터 바꾸고 있습니다.
물류 AI의 미래 : 버티컬 + 에이전틱
그렇다면 요즘 삼성SDS가 강조하는 ‘에이전틱 AI’는 기존 분석형·생성형 AI와 뭐가 다른 걸까요? 이름만 바꾼 또 다른 유행어일까요?
김성곤 상무는 “현재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한다면 지금까지 삼성SDS가 소개한 모든 기술은 앞으로 구닥다리 기술이 될 확률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달라질 AI 물류의 미래를 제시했죠. 삼성SDS가 그리는 그림은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됩니다.
첫 번째는 ‘버티컬 AI’입니다. 범용 생성형 AI가 모든 걸 아는 척하지만, 실제 물류 현장에서 쓰기엔 여전히 빈틈이 많습니다. 그래서 삼성SDS는 물류 전문가의 지식을 학습한 물류 특화 AI를 만든다는 계획입니다. 해상·항공·내륙운송은 물론 국가별 통관 규정, 규제 지식까지 아우르고, 수요 예측과 리스크 방지까지 가능한 AI 말입니다.
두 번째는 ‘에이전틱 AI’입니다. 지금의 생성형 AI가 담당자의 손발을 보조하는 수준이라면, 에이전틱 AI는 서로 다른 AI 에이전트들이 유기적으로 협업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며, 때로는 의사결정까지 대신합니다. 다시 말해, 생성형 AI가 잘하던 데이터 추출과 정리를 넘어서 ‘일을 실제로 굴리는 AI’가 된다는 겁니다.
“앞으로 AI 에이전트 간 유기적인 협동을 통한 자동화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AI 에이전트는 부킹 이상 같은 상황에 대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AI 에이전트와 협업할 겁니다. 결국 사람과도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물류 운영 전체를 최적화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미래는 머지않았습니다”
- 김성곤 삼성SDS 첼로스퀘어 운영팀 상무
물류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과 예외의 연속입니다. 그 속에서 분석형 AI는 데이터를 근거로 미리 대비하고, 생성형 AI는 반복적 업무를 대신하며 효율을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에이전틱 AI는 여러 AI가 협업해 스스로 일을 굴리는 단계로 진화하려 합니다. 결국 삼성SDS가 말하는 물류 AI의 여정은 ‘계산하는 AI → 움직이는 AI → 스스로 판단하는 AI’로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 모든 그림은 아직 실험 무대에 서 있습니다. 기술의 진화가 실제 물류 현장의 불확실성을 얼마나 줄여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여전히 데이터로 포착되지 않는 돌발 변수가 존재하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관계 역량은 물류 영업과 운영에서 여전히 결정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여러분의 현장은 어떠신가요? 오늘 사례가 각자의 운영을 고도화하는 데 작은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