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현관 앞에서 만나던 새벽배송. 갑자기 멈출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발단은 지난 9월 출범한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 회의에서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이하 택배노조)가 꺼낸 제안이었습니다. “자정(0시)부터 오전 5시까지 초심야 시간대의 배송을 제한하자”는 내용이었죠.
택배노조는 이번 제안이 ‘새벽배송 전면 금지’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쿠팡 새벽배송 기사들은 저녁 8시30분, 밤 12시30분, 새벽 3시30분까지 하루 세 차례 캠프에 들어가 직접 물품을 분류하고 3회전 배송을 수행하는데요. 이 중 가장 위험한 시간대(자정~5시)의 배송만 제한해 최소한의 수면 시간과 건강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죠. 다시 말해, 밤 12시까지와 오전 5시 이후의 배송은 계속 유지되기 때문에 새벽배송 서비스 자체는 지속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새벽배송 업계에서는 이 주장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장 쿠팡만 하더라도 자정까지 받은 고객 주문을 물류센터에서 분류하고, 배송거점(캠프)까지 간선운송 한 물량을 새벽배송 기사들이 픽업하여 최종 배송하는 식으로 운영하는데요. 특히 자정에 고객 주문이 몰리는 구조를 감안한다면, 주문 마감 시간을 앞으로 당겨서 고객 서비스 수준을 낮추는 결정을 하거나요. 기존과 동일한 물량을 제한된 시간에 처리하기 위해 더 많은 물류센터 인프라와 운영 인력, 새벽배송 기사를 확보해야 하는데 여기 들어가는 비용은 차치하고 단기간에 해결될 이슈도 아니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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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에서 시작된 이 논란은 이제 정치권까지 확산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지난 3일 CBS 라디오에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이 문제를 두고 토론을 진행했죠. 장혜영 전 의원은 “자정부터 5시까지 5시간 동안 새벽배송을 하지 않더라도, 새벽배송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있다”고 했고, 한동훈 전 대표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맞붙었지만요. “근로자의 건강권이 중요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대화는 계속 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멈춤이 만드는 딜레마
택배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실제 새벽배송 현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치열합니다. 쿠팡의 새벽배송 시스템을 기준으로 보면, 기사들은 하루 세 차례 회전하며 밀도 높은 배송을 수행하고, 재사용 포장재(프레시백)를 회수하는 업무까지 반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삶’을 위해 이 강도 높은 노동을 감수하는 기사들이 많다는 현실. 커넥터스에서도 여러 차례 다뤄온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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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순히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새벽배송’을 멈춘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우리는 매년 명절마다 반복되는 ‘택배 대란’을 기억합니다. 물류센터와 허브터미널의 업무가 멈춰도, 정작 고객의 ‘주문’은 멈추지 않습니다. 휴일이 끝나면 이커머스 물류센터에는 밀린 주문이 쌓이고, 센터 노동자들은 며칠간 야근을 감수합니다. 고객센터에는 “언제 오냐”는 문의가 폭주하죠. 누군가의 휴식이 또 다른 누군가의 과로로 이어지는 구조, 이로 인한 병목이 곧 우리가 겪는 ‘택배 대란’의 진실입니다.
새벽배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정부터 5시까지 배송을 막는다면, 그 시간 동안 처리되지 못한 물량은 결국 또 다른 누군가의 몫이 됩니다. 절반으로 줄어든 새벽배송 시간만큼 물량은 몰리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선 더 많은 인력과 인프라가 필요해집니다. 언뜻 보면 심야 노동을 줄여 건강한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함께 살펴봐야 할 건 ‘생계의 문제’입니다. 새벽배송 가능 시간 축소는 택배기사 1인이 담당하는 새벽배송 물량이 줄어들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종전보다 수입이 줄어들고, 택배기사의 생계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야간 배송을 병행하거나, 이중계정을 이용해 주 7일 근무를 이어가는 택배기사들도 있습니다. 이번 택배노조의 주장에 일부 새벽배송 기사들이 반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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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새벽배송 운영사들이 운임을 올려 기사들의 수입을 보전하기도 어렵습니다. 화주사들의 단가 인하 압박과 저단가 영업 경쟁의 만연으로 새벽배송 사업의 수익성은 이미 한계에 부딪혀 있습니다. 쿠팡 같은 거대한 규모가 아니고서야 현재의 구조에서 수익성을 만들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로 얼마 전 현금흐름 악화로 멈춰버린 국내 최대 새벽배송 업체 ‘팀프레시’를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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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멈춤이 아니라 ‘조정’입니다. 속도를 늦추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고객은 더 빠른 배송을 원하면서도, 그 이면의 노동에는 무관심합니다. 기업은 성장을 위해 효율을 추구하지만, 그 효율을 위해 종종 그 안의 사람들을 외면하죠.
새벽배송 금지 논란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것입니다. 속도가 중요시되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인간적인 노동의 리듬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플랫폼과 판매자, 물류센터와 터미널 운영사, 운송사와 택배사, 간선 운송기사와 택배기사, 최종 고객인 바로 우리들까지.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힌 가치사슬 속에서, 노동과 편리함 사이의 균형을 고민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