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분야에서 종사하는 16명의 산학연 전문가들이 공저로 참가한 책인 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만, 놀랍게도 그들이 짚는 맥락에는 공통점이 있더군요. 요는 팬데믹 이후 일상이 된 불확실성은 2026년에도 이어진다는 것이고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기업들의 치열한 고민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그 전략의 중심에 놓인 기술 키워드는 단연 ‘AI’였죠.
[함께 보면 좋아요! : 팬데믹이 촉발한 공급망 혼란, 과거의 답이 통하지 않는 이유, 커넥터스]
상수가 된 불확실성, ‘점’에서 찾는 개선점
<물류 트렌드 2026> 공저자인 어재혁 LX판토스 부사장(CL사업부장)은 “극단적인 효율성과 최적화를 추구하던 시대가 끝났다”고 운을 띄웠습니다. 지난 수십 년 글로벌 경제를 지탱했던 자유무역 체제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과 관세장벽으로 대표되는 폐쇄적 자국 우선주의로 무너지면서, 과거에는 당연하게 자리 잡았던 공급망 최적화 전략들이 더 이상 들어맞지 않게 됐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물류회사는 이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빠른 대응, 내지는 최적화와 효율화를 고민했고 이것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동시에 그전에는 발생하지 않을것이라 생각했던 위험이 언제든 자주, 크게 터질 수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사실을 주어진 상수 요인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조금 비용이 들더라도 이를 선제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공급망 불안정성, 불확정성에 대응하는 전략이 될 것입니다”
- 어재혁 LX판토스 부사장(CL사업부장)
물류에서 불확실성을 일으키는 요인은 크게 항만, 공항, 창고 등 거점과 해상, 항공, 육운과 같은 운송 경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를 어 부사장은 점(Node)과 선(Link)이라 표현했는데요. 많은 기업들이 해상운송, 항공운송과 같은 선을 잘 살피고 있지만, 의외로 변동성은 ‘점’에서 더 크게 일어나곤 한다는 것이 어 부사장의 진단입니다.
우리에게 가까운 예시로 11월 블랙프라이데이, 광군절 이벤트로 주문이 폭증했을 때 ‘창고’가 견딜 수 있는지 살펴본다면, 이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이슈입니다. 단순히 오토바이나 항공기처럼 빠른 배송 수단을 준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요. 사전에 수많은 상품 중에, 어디에 있는 고객이, 무엇을 주문할지 예측하여 재고를 거점에 전진 배치해야 하고요. 이에 맞춰 거점에서 일할 인력을 준비하고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는 등 운영 최적화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아요! : 5개의 이커머스 스타트업 물류센터를 ‘셋업’하고 배운 것, 커넥터스]
어 부사장은 “광군절과 같은 이벤트 기간에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이커머스 물동량과 주문 데이터를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며 “먼저 풀필먼트센터의 자동화 및 처리용량(Capacity)이 올라갔고, 동시에 예상되는 프로모션에 앞서 물리적으로 상품과 물류 운영, IT 역량을 준비했기 때문”이라 전했습니다.
<물류 트렌드 2026>의 또 다른 공저자인 쿠팡의 고기덕 상무는 쿠팡 풀필먼트센터의 레이아웃을 설계하고, 물류 설비와 시스템 예산을 기획 집행하여 운영을 준비하는 ‘셋업’을 담당하고 있는데요. 그는 수요예측 기반 창고 운영에 대해 아래와 같은 생각을 더했습니다.
“2월 말에서 3월 초까지 가장 많이 나가는 상품이 무엇일까요? 학용품입니다. 이와 같은 계절적 요인과 요일별 물동량 차이를 고려하여 빠른 시간 안에 패킹하고 배치할 수 있도록 알고리즘이 돌아가야 합니다. 많이 나가는 순서대로 고빈도, 중빈도, 저빈도 제품별로 재고 배치를 먼저 하여 효율화를 합니다.
요즘 추세는 물류 공정별 작업 시간을 축소시키거나, 아예 로봇으로 공정 시간을 없애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상품을 입고 받을 때 대기시간이 길었지만, 중간 작업을 생략시키고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줄이는 방안들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내년이나 내후년도에는 무인 풀필먼트센터까지 점차적으로 도입될 겁니다”
- 쿠팡 고기덕 상무(Service Design Excellence, Program Management Director)
반면 MFC(Micro Fulfillment Center) 기반 빠른 1시간 배송이 확산되는 데는 아직까지 규제와 비용 측면에서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고 상무는 “MFC는 당연히 가야 할 방향이고 누구나 도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ROI(Return on Investment) 측면에서 숙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라며 “물론 아마존이 최근 5시간 배송을 몇 개 도시에서 파일럿 테스트하는 것처럼 ‘수시간 배송’은 현재 기술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정말 이러한 빠른 배송 서비스가 기업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현장의 질문들, AI가 해결할 수 있을까
북토크 현장에서는 물류업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AI 기술의 가능성을 묻는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MFC를 운영하고 있는 한 물류 스타트업 대표는 “엄청나게 많은 제품을 빠르게 배송하는 역량을 키우려면 결국 예측을 통해 재고를 전진 배치하고, 시장 수요가 맞아 떨어져야 ROI가 나올 것”이라며 “과연 유통사가 아닌 물류만 하는 3PL 회사가 MFC를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지” 질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고 상무는 “유통업계의 마진이 크지 않아서, 상품을 직접 보유하고 전체적인 엔드투엔드 물류를 처리하면서 비용 절감을 진행하지 않는 이상 3PL 물류사가 MFC만 서비스로 운영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필요한 서비스는 맞고, 수요도 존재한다. 결국 이런 제약을 이겨내는 기업이 성공할 것”이라 답했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위험을 AI가 대응할 수 있을지 질문한 청중도 있었는데요. 한 AI 물류 솔루션 기업 엔지니어는 “과거 물류 리스크 관리가 수식화될 수 없던 이유는 현장 이슈의 데이터화가 어렵고, 예측 또한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에이전틱 AI 시대에 LLM(Large Language Model)이 가장 잘하는 것이 비정형화된 데이터를 정형화하는 것인데, 앞으로 AI 시대 리스크 관리와 의사결정은 어느 정도까지 데이터 기반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질문했습니다.
[함께 보면 좋아요! : 물류 실무자들이 꼽는, AI 자동화가 안 되는 3가지 이유, 커넥터스]
이에 어 부사장은 “에이전틱 AI 기술로 현장 데이터를 정형화하는 것은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공감하면서도, “하지만 현시점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건 완전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고, 공급망의 피크는 너무 급격하고 짧은 시간에 일어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어 부사장에 따르면 이런 일들은 AI에 자율의사 결정이 결합된 ‘에이전틱 AI’라도 대처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마음과 다음 행동을 쉽사리 예측하지 못하는 것처럼, AI도 마찬가지거든요. 이건 AI가 학습할 과거 데이터라 할 것이 마땅치 않으니까요. 팬데믹이든, 러-우 전쟁이든,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든, 앞으로 펼쳐질지 모르는 대만과 중국의 첨예한 상황까지.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함께 보면 좋아요 : 네이버가 ‘에이전틱 AI’로 바꾸고 싶은 커머스 생태계, 커넥터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어 부사장의 조언입니다.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한 이슈에 대해서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하고요. 동시에 AI 알고리즘과 수요예측 역량 고도화는 계속해서 해야 한다는 조언입니다.
결국 다시 ‘애자일(Agile)’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AI는 회복탄력성이 높은 공급망을 만드는 도구 중 하나이고요. 이를 다루고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사람이기에, 우리들의 역할은 앞으로도 중요합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분투하고 있는 많은 이들의 무운을 빕니다.
[함께 보면 좋아요! : 커니가 알려주는 요즘 ‘물류 컨설팅’ 트렌드, 커넥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