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센터 시장을 두고 높은 금리와 건축자재 비용 인상으로 인한 공급 절벽, 그리고 이미 현실화된 공실 위기 이야기가 먼저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장이 완전히 멈추지 않은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딜로이트가 이날 발표에서 가장 먼저 짚은 전제는 물류센터는 더 이상 변방의 자산이 아니라, 상업용 부동산 안에서 하나의 주요 섹터로 자리 잡았다는 점입니다. 전통적인 투자 자산이었던 주식과 채권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기관투자자들은 오래전부터 대체투자 비중을 늘려왔고, 그 과정에서 상업용 부동산은 비교적 안정적인 투자처로 인식돼 왔습니다. 물류센터 역시 그 흐름 위에 올라와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딜로이트는 물류센터를 오피스에 이어, 상업용 부동산 내에서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섹터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최근 물류센터 시장의 위기는 ‘수요가 사라진 결과’라기보다는 투자 환경이 급격히 경색된 결과에 가깝습니다. 상업용 부동산은 구조적으로 높은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자산입니다. 물류센터 역시 개발 과정에서 대출 비중이 60~70%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죠. 금리가 오르는 순간 공급이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금리의 방향성이 바뀌기 시작할 경우 거래 역시 다시 열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실제 발표에서는 최근 금리 환경을 두고, 과거 2~3년과 비교하면 물류센터 사업을 검토하기에 부담이 다소 완화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해석이 제시됐습니다. 최근 미국 연준의장의 교체로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와 관망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데요. 한국의 기준금리도 이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에, 앞으로 변화는 물류센터 투자를 다시 계산해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물류센터가 공급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수요 측면에서도 완전히 비관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류센터 시장의 성장을 만들어낸 가장 큰 동력은 온라인 시장의 확대였고, 이 흐름 자체가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커머스 성장률은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오프라인 유통 대비 성장률은 크고요. 온라인 침투율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 침투율이 늘어날수록 물류센터의 ‘필요 면적’은 더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딜로이트가 소개한 자료에 따르면, 동일한 1조2000억원의 매출을 기준으로 볼 때 오프라인 유통에서 필요한 창고 면적은 약 9천 평 수준인 반면, 온라인 유통에서는 약 2만8000평이 필요합니다. 피킹 중심의 작업으로 인한 동선이 필요한 구조, 다품종 소량 상품 구색 운영으로 인한 공간 비효율, 점포 대신 물류센터에 집중되는 재고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유통업의 온라인 전환이 이어진다면, 중장기적으로 더 많은 물류센터 면적이 필요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여기 더해, 최근 몇 년간 신규 물류센터 공급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함께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인허가는 받았지만 착공에 들어가지 못한 부지들이 늘어나고 있고, 과거처럼 ‘허가만 나면 짓던’ 시장은 더 이상 아닙니다. 이른바 ‘공급 절벽’이 현실화됐습니다. 단기적으로는 공실 문제가 부각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좋은 매물’을 찾기 어려운 시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물류센터 시장에는 여전히 투자를 검토하는 주체들이 남아 있습니다.
시장이 마주한 불편한 진실
다만 여기까지 이야기만 듣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따라옵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도 공실은 이렇게 많은 걸까. 그리고 왜 모든 물류센터가 아니라 ‘일부’만 선택받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이제 시장이 마주한 불편한 현실을 함께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딜로이트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상온 물류센터조차 자연 공실로 여겨지는 5% 수준을 훌쩍 넘어선 상태입니다. 2025년 기준 상온 물류센터의 시장 평균 공실률은 15.7%에 달합니다. 저온 물류센터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전체 평균 공실률이 40%를 넘어섰고, 일부 지역에서는 50~60%에 이르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수요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데, 공실은 왜 이렇게 줄지 않는 걸까요? 딜로이트의 해석은 비교적 명확했습니다. 지금의 공실 문제는 수요의 부재라기보다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 가깝다는 설명입니다. 물류센터를 찾는 기업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는 자산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의미입니다.
가장 먼저 지적된 것은 입지의 문제였습니다. 팬데믹 시기 물류센터 개발이 급증하면서, 노동력 수급이나 화물차주 접근성이 떨어지는 입지에도 센터들이 대거 들어섰습니다. 당시에는 “일단 지어두면 채워질 것”이라는 기대가 강했지만, 엔데믹 이후 소비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인력 확보가 어렵고, 운임 부담까지 커진 입지의 센터들은 자연스럽게 수요자의 선택지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수도권 상온 물류센터 중에서도 공실률이 높은 서북부 권역이 대표적 사례로 언급됩니다. 이 지역은 LG디스플레이의 구조 전환 등 산업 물량 감소로 인한 화물차주 수급 어려움, 주요 소비지 접근성의 한계가 겹치며 비선호 입지로 분류되고 있다는 것이 현장 실무자들의 공통된 평가입니다.
두 번째는 스펙의 문제입니다. 최근 물류센터 수요의 중심은 이커머스 물류 처리와 자동화 운영 가능성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 조건을 충족하려면 한 개 층 면적이 4000~5000평 이상으로 충분히 크고, 자동화 설비 설치를 위해 제곱미터당 2톤 이상의 바닥 하중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검토 대상에서 아예 제외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과거 B2B 물류를 기준으로 설계된 센터들이 빠르게 경쟁력을 잃고 있는 이유입니다.
특히 저온 물류센터에서는 이 문제가 더 복합적으로 드러납니다. 상온 대비 높은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 속에 공급은 빠르게 늘었지만, 실제 수요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식품 이커머스 성장 속도의 둔화, 높은 운영비 부담으로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사업 비중을 줄이는 기업들이 늘어났고요. 재고를 두지 않는 크로스도킹 운영으로 대체 등으로 인해 저온 물류센터는 가장 먼저 구조적 한계에 부딪힌 섹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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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시기의 문제도 겹쳤습니다. 2020~2021년 팬데믹 국면에서 인허가를 받고 추진됐던 물류센터들이 2023~2024년에 집중적으로 준공되며, 수요 둔화 국면과 정면으로 충돌한 것입니다. 공급은 한꺼번에 쏟아졌고, 수요는 예상보다 빠르게 식었습니다. 이 타이밍 미스가 현재의 공실 문제를 더욱 증폭시켰다는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