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통기업을 넘어 브랜드 기업들까지 ‘물류’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들으면 조금 낯설 수 있습니다. 브랜드 기업은 제품을 만들거나 소싱하고, 판로를 개척하고, 마케팅을 하는 조직이니까요. 물류는 판매 이후 조용히 돌아가는 기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직접 물류를 하겠다고 합니다. 심지어 3자 물류(3PL) 서비스를 외부 브랜드에 제공하겠다는 곳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 법한 회사들의 이름을 나열해 볼까요. 동남아시아에서 물티슈 1위를 만든 브랜드 기업 ‘플로위드’는 최근 다른 브랜드의 해외 판로 개척을 돕고 있습니다. 단순히 제품을 대신 판매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현지 유통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마케팅 전략을 설계하며, 운영 구조를 세팅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물량을 기반으로 확보한 물류 단가를 외부 브랜드와 공유합니다. 자연스럽게 ‘브랜드 얼라이언스’ 구조가 형성되고, 물류는 그 구조를 굴리는 핵심 장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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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노쉬, 클룹 등을 보유한 브랜드 기업 이그니스 역시 유사한 방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체 브랜드를 운영하며 확보한 물량을 기반으로 물류 자회사를 설립했고, 더 나아가 외부 브랜드의 물류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운영을 통합하며 만든 원가 경쟁력을 외부에 개방해 새로운 수익 구조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물류는 독립된 사업이면서 동시에 브랜드 성장 구조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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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브랜드 ‘가히’의 행보도 주목할 만합니다. 가히는 최근 자사 브랜드를 넘어서 플랫폼 구조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외부 3자 브랜드의 입점을 받는 구조를 만들고 있고, 동시에 글로벌 진출을 전제로 한 3자 물류 사업 모델까지 정비하고 있습니다. 이미 자사 상품을 위해 구축해 놓은 마케팅·채널·물류 인프라 위에 외부 브랜드를 얹는 방식입니다. 말하자면 하나의 브랜드가 사용하던 인프라를 ‘공용 플랫폼’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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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시도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마케팅과 판로가 먼저이고, 물류는 그 뒤를 받친다는 점입니다. 물류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려면 ‘물량’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물량은 저절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잘 팔리는 채널을 찾고, 입점하고, 마케팅을 집행해야 만들어집니다. 결국 채널과 마케팅 역량을 확보한 기업만이 물류를 전략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브랜드 기업들의 물류 사업은 흥미롭습니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단순 창고 운영이나 포장, 배송 위탁에 머무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들이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축적한 채널 이해도, 마케팅 실행력, 운영 노하우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외부에 제공하고, 그 안에 물류를 포함시키는 구조가 하나둘 나오고 있죠. 말하자면 물류 서비스를 파는 것이 아니라, ‘성장 구조’를 판매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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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가 브랜드의 ‘돈’이 되는 이유
브랜드 기업은 왜 굳이 물류까지 하려는 걸까요. 그 안에는 꽤 현실적인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핵심은 ‘물량’입니다. 자체 브랜드로 연 매출 수백억, 많게는 수천억 원 이상 규모를 만들어낸 기업들은 이미 상당한 물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물량은 곧 협상력으로 이어집니다. 국내 택배사든, 해외 특송사든, 포워딩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물량이 없는 업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단가를 확보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사업 기회가 생깁니다. 이미 확보한 단가를 외부 브랜드와 공유한다면 어떨까요. 브랜드 기업은 일정 마진을 남기면서도, 외부 브랜드에게는 개별 계약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내부에는 추가 수익이 생기고, 외부에는 비용 절감 효과가 생깁니다. 구조는 단순하지만, 작동 원리는 명확합니다.
특히 소비 침체 국면에서는 이 모델의 매력이 더 커집니다. 브랜드 기업 입장에서 매출은 불확실합니다. 광고비는 오르고, 전환율은 흔들리고, 재고 부담은 커집니다. 반면 물류는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낮습니다. 이미 구축된 인프라에 외부 물량을 얹는다면 고정비는 분산되고, 수익 구조는 안정됩니다. 다시 말해, 브랜드 운영 과정에서 만들어낸 ‘규모의 경제’를 외부에 판매하는 셈입니다.
물론 이런 역할을 기존 3PL이나 포워딩 기업이 못 하는 것은 아닙니다. 차이는 앞단에 있습니다. 브랜드 기업은 물류를 넘어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실제로 성장 과정에서 활용했던 판로 개척 전략, 마케팅 실행력, 채널 운영 경험까지 함께 제안합니다. 특히 글로벌 진출처럼 가치사슬이 복잡한 영역에서는 이 차이가 더 크게 드러납니다. 단순 운송이 아니라, ‘판매 구조 전체’를 설계해주는 접근이기 때문입니다.
해외 진출을 고민하는 소형 브랜드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현지 채널 입점, 광고 집행, 인플루언서 협업, 물류 셋업까지 각각 따로 계약해야 한다면 부담은 상당합니다. 반면 하나의 브랜드 기업이 “우리가 실제로 해본 구조 그대로 세팅해드리겠다”고 제안한다면 의사결정은 훨씬 단순해집니다. 물류는 그 패키지 안에 자연스럽게 포함됩니다.
이 구조에서 물류는 단독 상품이 아닙니다. ‘성공 가능성’과 함께 판매됩니다. 그래서 지금 브랜드 기업의 물류 사업은 수익 구조 다변화이자 리스크 분산 전략에 가깝습니다. 본업의 성장 둔화를 방어하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마진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