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북클럽에 앉은 20명은 저마다 다른 물류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글로벌 물류기업 한국지사에서 전국 물류센터를 관리하는 사람,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의 신선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사람, 운송기사 수백 명을 배차하는 사람, 버티컬 플랫폼에서 월 수십만 개의 상품을 전 세계로 보내는 사람. 같은 ‘물류’라는 단어를 쓰지만 하는 일은 모두 달랐어요.
그런데 이들이 던진 질문들을 하나씩 읽다 보니 공통점이 보였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물류 셋업과 운영, 설비 자동화, 시스템 최적화에 관한 질문처럼 보였는데요. 파고들면 결국 같은 곳에서 막혀 있었어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WMS보다 먼저 풀어야 할 것
NGO 물류팀에서 일하고 있는 한 참가자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는 최근 회사에서 WMS(Warehouse Management System) 도입을 맡았다고 했습니다. 기부 물품을 다루는 특성상 SKU(Stock Keeping Units)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고요. 기존에는 엑셀로 재고를 관리했는데 단위조차 맞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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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거봉 님의 답은 시스템이 아니라 데이터, 더 정확히는 ‘커뮤니케이션’에 있었습니다. WMS를 도입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같은 상품을 지칭하는 기준 정보를 맞추는 것인데요. 이를 위해서는 물류팀뿐만 아니라 상품을 관리하는 MD 조직, 외부 발주 업체의 정보까지 일치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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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과정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당장 양거봉 님이 일했던 한 브랜드 회사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SKU를 다루고 있었는데도 기준 정보 관리가 잘 안 됐다고 해요. 정보를 넣는 사람마다 상품명을 다르게 넣고, 입수 단위 기준도 제각각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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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술 문제처럼 보이는 WMS 도입에 앞서 선행돼야 하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기준을 맞추는 일이었습니다.
자동화가 효과를 못 내는 진짜 이유
다음은 한 물류 솔루션 기업 실무자의 질문이었습니다. 자동화 설비 도입 이후 실제로 비용이 줄어든 사례를 공유해달라는 거였어요.
양거봉 님의 답은 의외였습니다. “자동화를 한다고 비용이 큰 폭으로 떨어지진 않는다”면서 “자동화의 진짜 역할은 품질의 표준화”라고 강조했는데요. 자동화는 비용을 줄이기보다, 오늘 처음 나온 작업자도 숙련된 작업자처럼 일하도록 만드는 생산성 표준화에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 말았어야 할 자동화 사례도 공유됐습니다. ‘보여주기를 위한 자동화’, ‘보고를 위한 자동화’가 그거예요. 양거봉 님에 따르면 아무리 크고 비싼 설비가 도입된 물류센터라도 물성에 대한 이해 없이 같은 프로세스를 반복하면 효과가 나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요즘 박람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덤블링하고 무술 시범을 보이는 로봇들이 대표적인 사례일 수 있어요. 로봇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렇게 로봇이 덤블링하도록 만드는 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이 보기에 어려워 보이는 동작’을 하는 로봇은 투자자나 대중의 마음을 살 수는 있어도, 실제 현장 운영에는 별반 쓸모가 없을 수 있거든요.
자동화에 대한 현장 작업자 저항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양거봉 님은 이에 대해 “저항은 당연하다”고 평가했는데요. “프로세스가 바뀌었는데 종전 이상의 생산성을 너무 빠르게 요구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설비를 도입할 때 중요한 것은 현장 작업자의 의견을 먼저 녹여서 프로세스를 만드는 일이고요. 때로는 작업자들의 반발을 뚫고 강행하는 의사결정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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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이커머스 물류센터에서 현장 관리자로 일했던 참가자 한 분이 자신의 에피소드를 공유했습니다. 물류센터에 신규 기능을 도입했을 때 사용률이 낮은 현장 작업자를 한 명씩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유를 찾아냈다고 했어요. 100명을 인터뷰하다 보면 겹치는 이유가 나온다고요. 자동화의 문제를 푸는 데 결정적이었던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었습니다.
현장을 내 편으로 만드는 법
한 자동화 설비업체 대표는 설비 도입에 따른 현장의 반발로 고민했다는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현장 작업자를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이 궁금하다는 질문을 했습니다. 양거봉 님이 꺼낸 원칙은 단순했어요.
첫째, 제일 먼저 나오고 제일 나중에 간다.
둘째, 뭔가를 지시하거나 바꾸려 하기 전에, 무엇이 제일 어려운지 듣는다.
양거봉 님은 한 브랜드 기업 물류회사에 운영 총괄 임원으로 입사하고 약 한 달 동안 현장 작업자들과 함께 일한 에피소드를 전했습니다. 직접 상하역 작업을 하고, 랩을 감고, 포장을 했어요. 한창 신혼이었음에도 물류센터가 위치한 용인에 방을 잡고 아예 살기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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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경험을 가진 한 분이 말을 보탰어요. 화물운송 업체의 경영진인 그는 화물차주와 사무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경험을 전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현장과 관리팀 사이의 언어가 달라요. 양쪽이 쓰는 단어가 다르고, 같은 단어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요. 그 중간 역할만 잘해줘도 금방 풀립니다”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양거봉 님이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커뮤니케이션이든 솔직해야 합니다. 다만 솔직함 뒤에는 고민이 있어야 해요. 안 된 건 안 됐다고 말하되, 문제가 뭐였고 앞으로 어떻게 개선할지를 같이 이야기해야 합니다. 결국 모든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가 뭘 필요로 하는지 알고, 그것을 먼저 꺼내주는 것입니다”
물류 현장을 오래 들여다보면 이상한 패턴이 보입니다. 기술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가 어느 순간 사람 이야기로 흘러가는 거예요. 어제도 그랬습니다. 시스템을 묻는 질문이 기준 정보를 맞추는 커뮤니케이션 이야기로 넘어갔고, 자동화를 묻는 질문이 작업자의 저항으로 이어졌습니다. 풀필먼트가 막히는 곳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