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투자가 없었다”는 진단은 그저 감정적인 아쉬움일까요, 아니면 근거가 있는 평가일까요.
전직 홈플러스 고위 관계자가 짚는 출발점은 인수 구조 그 자체입니다. MBK파트너스의 기본적인 문제는 차입금을 몇조원 당겨서 회사를 산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 인수 이후 홈플러스는 약 10년 간 이자를 갚는데 만 2조 7,000억 원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통업은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업종인데, 빚을 갚는데 돈을 쓰다 보니 신규 물류센터는 물론 기존 자산을 개선할 여력조차 없었다는 겁니다.
홈플러스는 MBK파트너스 인수 이후 부채 상환을 위해 부동산을 팔아서 다시 임대해 쓰는 ‘세일즈앤리스백’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대표적인 신호였습니다. 물류센터도, 심지어 매출이 높은 우량 점포도 팔았습니다. 이로 인해 금융비용은 줄었을지 모르지만, 그 자리를 운영비용이 대체했다는 것이 전직 홈플러스 관계자들의 평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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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형마트가 잘나가던 시기에는 이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있었습니다. 팬데믹이 찾아오기 직전인 2019 회계연도(2019년 3월~2020년 2월)에도 홈플러스의 영업이익은 다소 악화됐을지언정 1,601억원 수준을 유지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사이 쿠팡 로켓배송으로 대표되는 빠른 배송 서비스 경쟁이 격화됐고, 이자 비용을 감당하기에 급급했던 홈플러스는 여기 제대로 참전하지 못했습니다. 덩달아 팬데믹이 터지면서 오프라인 수요는 빠르게 온라인으로 흡수됐습니다. 이미 게임은 끝났습니다.
“홈플러스 계산점 풀필먼트센터는 고작 40~50억 원을 투자하여 하루 1,300~1,500건을 처리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다른 대형 유통업체가 900억 원 이상의 돈을 투자하여 김포에 자동화 풀필먼트센터를 구축했는데, 이게 하루 6,000~7,000건 정도 물량을 처리했던 것으로 압니다. 900억 원이면 저희 방식으로 전국에 18개 센터를 확장할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비용 대비 효율은 이미 검증됐는데,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 전직 홈플러스 고위 관계자
다른 곳에서 피어난 혁신의 씨앗
물론 이 모든 걸 MBK파트너스 한 곳의 책임으로만 돌리기엔 조심스러운 구석도 있습니다. 2015년은 대형마트 업황 자체가 정점을 지나 하락을 앞둔 시점이었고, 그 직후 쿠팡의 성장과 코로나19라는 외부 변수까지 겹쳤습니다. 이 시기를 잘 넘긴 유통기업은 국내에 많지 않습니다. 실제로 홈플러스뿐만 아니라 이마트와 롯데마트 모두 오랜 침체기를 버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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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쉬움은 남습니다. 홈플러스가 씨를 뿌린 이커머스 인프라의 발상은 시대를 앞서 있었습니다. 홈플러스는 그 씨앗을 키워야 할 10년 동안 정작 물을 주는 대신 밭을 내다 판 결과에 가깝다는 게 안팎에서 이 회사를 오래 지켜본 이의 진단입니다.
“롯데도, 이마트도 힘든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월마트는 아마존과 경쟁하면서도 나름의 대응을 해왔잖아요. 홈플러스와 같은 우량 기업이 10년 만에 파산 직전까지 몰린 건, 단순히 업황 탓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이나 조직 문화 같은 미시적인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장기적인 투자 책임의 문제입니다”
- 전직 홈플러스 고위 관계자
물류업계에서는 이후 많은 홈플러스 물류 담당 임직원들이 쿠팡으로 넘어가 못다 한 도전을 이어간 것을 기억합니다. 초기 쿠팡의 물류망을 예스24 출신 실무자들이 다졌다면, 전성기의 물류 인프라는 홈플러스 출신 인력들이 완성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오죽 홈플러스 출신 직원이 많았으면, 한때 쿠팡에 ‘홈팡’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였습니다.
씨는 홈플러스가 뿌렸고, 꽃은 다른 곳에서 피었습니다. 그 사이 홈플러스에 남은 건 텅 빈 매대와, 도마가 진열된 냉장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