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업계를 달군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쿠팡 PB 상품(Private Brand)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을 보도한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1) 쿠팡 PB 상품 상당수가 중소기업의 기존 제품을 베꼈고, 2) 그렇게 올린 PB 상품의 플랫폼 상위 노출을 위해 쿠팡이 직원들을 동원해 리뷰 몰아주기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쿠팡측은 이에 대해 리뷰 작성은 직원들의 자발적 참가 신청으로 이뤄졌고, 노출 순위는 공정하게 결정한다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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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심판(플랫폼)이 선수(공급자)들과 함께 경쟁하는 쿠팡과 같은 사업 구조 안에서 이런 논란은 새롭지 않습니다. 쿠팡은 3자 판매자가 입점하여 상품을 판매하는 마켓플레이스(아이템마켓) 사업모델과 공급자의 상품을 매입하여 판매하는 리테일(로켓배송) 모델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 더해 쿠팡이 위탁생산망을 가동하여 제조한 쿠팡의 자체 브랜드 PB 상품도 쿠팡이라는 하나의 플랫폼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쿠팡이라는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공급사와 플랫폼이 ‘상품’으로 경쟁하는 구조가 여기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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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업구조 안에서 플랫폼은 1) 3자 판매자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자체 상품 기획을 하고, 2) 플랫폼 안에서 우선 노출했다는 의혹에 쉽게 휩싸이곤 합니다. 특히나 중간 유통상이 배제되는 PB상품은 플랫폼 입장에서 마진율이 높습니다. 직매입한 상품에 대한 재고 처리 스트레스는 플랫폼이라고 사라지진 건 아닙니다. 따라서 플랫폼 입장에서 ‘자체 상품 밀어주기’를 할 만한 충분한 유인은 있습니다.
당장 쿠팡이 벤치마킹한 아마존부터 3자 판매자의 상품 베끼기 의혹은 예부터 잊혀질 때마다 한 번씩 나오던 이슈였습니다. 아마존 셀러들이 열심히 팔고 있던 상품을 어느 날 갑자기 아마존이 직접, 더 저렴하게 판매하며 상품 순위가 와장창 떨어졌다는 괴담(?)은 현실 세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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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이 있기에 3자 판매자들은 플랫폼이 데이터 접근성을 활용하여 자체 상품을 기획하고 밀어줬다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플랫폼이 정말로 상품을 베꼈고, 그렇게 기획한 자체 상품을 밀어줬는지에 대해서 ‘물리적인’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쿠팡 역시 이번 조선일보 보도 이전인 지난해 PB 상품을 우선 노출되도록 알고리즘을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아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았지만 그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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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고객 중심적인 기업
언젠가 저는 미국 아마존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한 사람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마존 셀러로 일하고 있는 그를 통해 아마존 셀러 사이에서 돌고 있던 ‘괴담’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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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따르면 아마존이 셀러에게 상품을 공급하는 원청 업체에게 접근하여 직접 물건을 받아 판매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합니다. 결국 아마존과 직접 경쟁하게 된 중간 유통상은 경쟁에서 배제돼 어느 순간 플랫폼에서 사라집니다.
당연히 아마존은 이 과정에서 ‘데이터’를 고려한다고 합니다. 만약 특정 카테고리의 상품이 아마존 플랫폼에서 잘 팔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띄고, 그 제품을 아마존이 직접 안 팔고 있다면 상품 공급사에게 접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설명입니다.
아마존이 이런 행위를 하는 이유도 있었으니 ‘고객’ 때문입니다. 아마존 입장에선 중간 유통상을 배제하고 원청에게 상품을 공급받을수록 고객에게 더 저렴한 가격의 상품을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아마존과 직접 경쟁하게 되는 리셀러 입장에서는 안타깝지만, 아마존 입장에선 마땅히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됩니다.
쿠팡 또한 아마존의 길을 따라갑니다. 몇 년 전 저는 한 홈트레이닝 용품 브랜드사 대표를 만나 관련 내용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업체는 쿠팡의 제안을 받아 로켓배송에 상품을 직접 납품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헌데, 원래 쿠팡 플랫폼에는 이 업체의 상품을 떼어다 팔던 ‘리셀러’가 있었다고 합니다. 원청이 쿠팡에 직접 등판함에 따라 자연히 가격 경쟁에서 도태된 리셀러는 얼마 안 있어 쿠팡 플랫폼에서 사라졌다는 게 저에게 이야기를 전해준 대표의 설명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쿠팡 로켓프레시에 가공식품을 납품하던 한 업체 대표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언젠가 쿠팡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와서 가격조건을 맞추지 못한다면 가공식품을 생산하는 공장에 쿠팡이 직접 접근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뭐 저런 게 다 있나, 설마 하겠나’ 생각하며 통화를 끊은 그는 얼마 뒤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으로부터 쿠팡에서 진짜 연락이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공장과 그의 관계가 끈끈하지 않았다면 앞서 쿠팡에서 조용히 사라진 홈트레이닝 용품 리셀러와 같은 일이 그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죠.
판매자들 입장에서 당연히 쿠팡의 이런 행위는 마음에 들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고객 관점에서 리셀러를 배제하고 원청에 접근하는 쿠팡의 행위는 ‘용납’될 수도 있겠죠. 그저 쿠팡이라는 플랫폼이 추구하는 방향이 판매자와의 상생보다는 고객 관점에 맞춰져 있을 뿐입니다.
ESG의 나비효과
처음 조선일보의 보도 이슈로 돌아와서 PB상품은 쿠팡이 직접 매입하는 로켓배송 이상으로 상품과 가격 통제권을 확연히 가져가는 방법이 됩니다. 조선일보가 ‘베끼기’ 의혹을 제기했지만, 명확한 브랜드가 없는 제품은 이미 쿠팡이 만들기 이전에 누군가가 누군가의 것을 베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산 삼선슬리퍼가 아디다스가 아닌 것은 누구나 알고 있고, 소비자들은 그저 저렴하고 상품품질이 괜찮다면 이런 제품을 구매하죠. 쿠팡 역시 위탁생산한 PB제품을 대체재와 비교하여 ‘저렴하게’ 고객들에게 판매함은 물론입니다.
쿠팡의 해명처럼 PB를 만드는 과정에서 쿠팡과 협력하는 ‘생산업체’와는 상생 구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엄청난 트래픽을 만드는 쿠팡으로 인해 ‘규모의 경제’의 효율화를 바탕으로 고정 납품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쿠팡의 PB상품 곰곰 샐러드의 ODM 생산업체 ‘스윗밸런스’의 매출은 쿠팡과 협력 이후 2년만에 5배 이상 커졌습니다. 쿠팡을 레퍼런스로 스윗밸런스는 더 많은 외부 업체와의 협력 사례를 만들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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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과정에서 배제되는 존재가 있다면 ‘중간 판매상’입니다. 쿠팡이 직접 상품을 매입하여 판매하든, 생산업체와 협력하여 PB를 만들어 판매하든 종전 해당 제품을 떼어다 팔던 리셀러들의 설 곳은 점차 사라질 것이 자명합니다. 리셀러들 역시 브랜드들이 중간유통상을 배제하고 온라인에 직접 판매하는 D2C(Direct to Customer)의 확산이라는 시대적 변화로 그들이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리셀러들도 어느 정도 단계가 온다면 ‘자체 브랜드’를 갖추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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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고객 중심적인 기업을 자부할 수 있는 쿠팡은 이런 중간상과의 관계에서 그리 ‘친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초기 상품 선택권(Selection) 확충에 있어 중간상의 지분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이미 수억개의 상품 구색을 자랑하는 쿠팡 입장에서는 더 저렴하고, 더 높은 품질의 상품을 직접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간상들은 딱히 쿠팡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간상을 마냥 신경 쓰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 옳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공급사 관계의 파열음이 향후 규제와 같은 나비효과로 쿠팡을 덮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때 쿠팡이 지불해야 할 비용은 지금보다 훨씬 더 클지 모릅니다. 고객에 미친 기업 쿠팡이 외부에 보이는 채널에선 ESG를 이야기하며, 판매자들과의 상생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