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취재에선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하기 직전인 2013년 12월까지 홈플러스 SCM본부장(전무)으로 재직했던 윤현기 새얼로지스토리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현재 물류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그에 따르면 홈플러스 퇴직 후에도 이커머스 및 자동화 동향 관련하여 지속적으로 홈플러스 현장을 방문했고, 자료 검토도 했기에 MBK파트너스 인수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도 객관적 외부 시각으로 평가가 가능하다는 의견입니다.
그리고 익명을 요구한 또 한 분의 홈플러스 임원 출신 인사 A씨와도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그는 실제 MBK파트너스 인수 이전과 이후의 홈플러스를 모두 경험한 인사인 만큼, MBK파트너스 인수 하에 홈플러스 경영 환경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신기한 것이 이 두 분의 이야기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더군요.
① 막대한 레버리지에 대한 부담
이건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죠. MBK파트너스는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인수할 때 수조원 단위의 대규모 차입금을 레버리지로 사용했는데요. 문제가 있었다면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시기가 2010년대 초 대형마트의 초호항기, 기업가치의 고점과 맞물렸다는 겁니다. 같은 시기 모바일 시대가 개막하고 온라인 유통업체들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는데요. 오프라인 유통 비즈니스가 하락세를 타는 와중에 외부 차입금에 대한 이자비용 부담은 홈플러스가 정상적인 경영을 하는데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됐다는 평가입니다.
“제가 홈플러스에 근무하던 2010년대 초반은 리테일 업계에서 대형마트의 전성기라 불리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쿠팡을 비롯한 소셜커머스 3사가 등장했을 때 홈플러스 내부에서는 크게 우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애초에 성장 DNA가 틀리고, 고객 DB와 매출을 어느 정도 높이면 기업을 매각하고 나갈 것이라고 봤죠. 사실 테스코가 홈플러스를 MBK파트너스에 매각한 것도 홈플러스의 문제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영국 본사의 사정으로 매각한 것이었는데, 그만큼 홈플러스는 잘 나가던 기업이었죠”
- 윤현기 새얼로지스토리 대표
사실 막대한 레버리지는 MBK파트너스의 투자 실패일지언정, 책임이라고 평하긴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에야 홈플러스의 매출이 7조원 이하로 줄어들었지만요. 한때 11~12조원 매출을 넘보는 거대한 유통기업이 홈플러스였으니까요. 이렇게 잘 나가던 기업이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 예측하는 것은 MBK파트너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다만 두 인사가 지적하는 문제가 있으니, 이 경쟁력 악화에는 분명한 MBK파트너스의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연결되는 두 번째 이유를 살펴보죠.
② 유통에 대한 몰이해
윤 대표에 따르면 ‘유통업’은 제조공장 이상으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신규 점포를 오픈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지원하는 물류시설 투자, 기존 노후된 자동화 자산에 대한 교체 등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는 건데요. MBK파트너스 인수 하에 홈플러스는 이러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MBK파트너스는 오히려 잘 나가던 핵심 점포 자산을 팔고 재임차하는 ‘세일즈앤리스백’ 방식으로 홈플러스의 자산 유동화를 시도했는데요. 이는 홈플러스 인수 당시 사용한 막대한 차입금에 대한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위한 것이었고, 투자는 요원한 것이었습니다.
“유통은 고객과 직접 만나는 접점이고, 고객의 소비 환경이 변함에 따라서 이에 대응하는 IT나 물류에 대한 투자가 당연히 필요해집니다. 그런데 MBK파트너스는 이러한 속성을 전혀 몰랐어요. 홈플러스 인수 이후 그들의 전략은 ‘부채 상환’을 위한 세일즈앤리스백을 추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금융비용을 줄일 수는 있을지언정, 운영비용은 오히려 올라가는 거잖아요? 과거 홈플러스가 잘 나가던 시절에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거든요. 재무가 악화될 수밖에 없죠”
- 윤현기 새얼로지스토리 대표
“복잡한 운영 구조를 갖고 있는 갖고 있는 마트 유통을 MBK파트너스가 너무 우습게봤지 않나 싶습니다. MBK파트너스 인수 당시 삼성 출신으로 경험이 많던 임원진들은 전부 나갔고요. 새롭게 경영진으로 합류했던 사람들은 유통업에 대한 경험이 일천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름 홈플러스가 10조원이 넘는 규모의 유통회사인데 금융업을 하던, 혹은 아주 작은 회사만 경험했던 사람들이 경영진으로 합류해서 유통업의 복잡성을 판단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 MBK파트너스 인수 전후를 경험한 홈플러스 임원 출신 인사 A씨
③ 투자는 없었다
두 명의 홈플러스 출신 인사는 입을모아 MBK파트너스 인수 이후 홈플러스가 전혀 시장 대응을 위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온라인’에 대한 대응인데요. 경쟁사인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설령 ‘실패’라고 평가받을지언정 이커머스 및 여기 대응하기 위한 물류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지속했지만요. 홈플러스는 전혀 그러한 투자가 없었고, 오히려 단기적인 이자비용, 운영비용을 줄이는데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테스코 시절 홈플러스는 인적자원에 지속적으로 투자했어요. 저만 하더라도 2005년 영국 테스코 본사에서 진행하는 임원 교육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요. 거기에서 필립 클라크 테스코 CEO가 “여기 참가한 분들은 전 세계 50만 인력 중 500명, 0.1% 중 하나로 테스코가 성장하기 위해선 여러분 같은 임원들이 계속해서 나와야 했다”고 이야기한 것이 기억납니다. 조직 분위기도 매우 좋았죠.
MBK 인수 이후는요? 전성기 시절 2만6000명이 넘는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홈플러스 임직원 숫자는 이제 2만명이 채 안되고요. 왜 나갔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내용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조금만 흠집이 생겨도 아웃 당하고, 직급이 깎이는 사례도 봤습니다. 나간 인력들은 제대로 보충되지 않아 기존 인력들의 업무는 가중되고요. 투자를 하지 않으니 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 의욕도 떨어집니다. 조직을 부흥시킬 문화 동력을 잃은 겁니다”
- 윤현기 새얼로지스토리 대표
“이커머스 투자요? 전혀 없었습니다. 이커머스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는 없었다고 보면 됩니다. 오히려 잘 나가는 주요 점포들을 매각했잖아요? MBK파트너스는 빚을 갚고, 포장하여 기존 자산을 파는데 집중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매출이 가장 높은 핵심 점포가 날아갔는데 경영이 잘 될 일이 없죠”
- MBK파트너스 인수 전후를 경험한 홈플러스 임원 출신 인사 A씨
홈플러스 회생은 가능한가?
두 홈플러스 임원 출신 인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간 홈플러스의 회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혹여 기업회생에 성공하더라도 MBK파트너스의 경영 하에서는 기존과 같은 기조가 계속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고요. 그나마 회생을 위한 희망을 찾는다면 ‘인수합병’을 통해 홈플러스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회생절차에 들어선다면 상환해야 하는 금융부채가 조정이 되잖아요? MBK파트너스는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고자 아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에 대해 단기적인 성과가 나온다면 시장 평가가치가 나올 테니 통으로 홈플러스를 팔거나, 쪼개서 팔거나 매각 절차를 진행할 것이고요. 그렇게 못한다면 기업가치가 낮아진 홈플러스를 누군가 인수하는 그림이 그려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헌데 지금 상황에서 홈플러스를 인수해서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기업이 누굴지 쉽게 그려지지 않네요”
- 윤현기 새얼로지스토리 대표
“저는 홈플러스가 회생되길 원하죠. 제가 있었던 곳이니까요. 그렇지만 회의적입니다. 지금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외에는 제대로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렇다고 앞으로 마트 업황이 좋아질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정상적인 영업이 되더라도 회생으로 가기 쉽지 않은데, 이번 사태로 이미지까지 추락했잖아요? 그나마 활로는 매각이 아닌가 싶은데 누가 가져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MBK파트너스 인수 전후를 경험한 홈플러스 임원 출신 인사 A씨
정리하자면 두 인사는 모두 이번 홈플러스의 법정관리에 대해 MBK파트너스의 책임이 ‘있다’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무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홈플러스의 업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된 데는 MBK파트너스의 경영 기조에 영향이 있었다는 설명이었고요. 이번 법정관리는 거의 파산 직전에 MBK파트너스가 손을 들어버려서 발생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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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홈플러스가 MBK파트너스로부터 인수된 2015년은 쿠팡이 로켓배송을 시작한 2014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그리고 업계 사람들은 많이 알고 있지만 홈플러스 출신 물류 담당자들은 상당수 쿠팡으로 이직하여 그 물류망을 개척했죠. 한때 물류업계 담당자들 사이에서 쿠팡이 ‘홈팡’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로요. 물론 당시만 하더라도 쿠팡은 홈플러스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작은 회사였는데요. 지금에 와서 두 기업의 명운이 갈린 것은 어쩌면 시대가 만든 역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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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넥터스 독자 여러분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흥신소 ‘와이낫’은 다음 주에도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이 궁금한, 인공지능도 모르는 것 같은 주제가 있다면 언제든 제보 부탁드리고요. 이슈를 챙기느냐 우선순위에서 조금 밀렸는데 현재는 ‘일요일 배송은 정말 판매자 매출에 도움이 될까?’, ‘트럼프 시대를 맞은 글로벌 물류기업의 대응책’ 등을 주제로 알아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