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취재는 26일 삼성SDS가 주최한 연례행사 ‘첼로스퀘어 컨퍼런스 2025’의 키노트 발표를 참고했습니다. 마침 키노트를 맡은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가 ‘트럼프 2기 지정학 변화와 글로벌 공급망 대전환’을 주제로 발표했기 때문이고요. 여기 더해 실제 트럼프 2기에 대응하여 글로벌 물류 전략을 준비하고 있는 삼성SDS 오구일 물류사업부장(부사장)의 발표도 참고했습니다. 다만, 문제의 복잡성만큼이나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정답’은 없다는 것을 산정하고 정리를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공급망 다각화’
앞서 인공지능이 제시한 답처럼 ‘공급망 다각화’는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일반적인 전략으로 언급돼 왔습니다. 비단 이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이슈뿐만 아니라요.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 공장 폐쇄 이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영공 봉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따른 홍해 항로 봉쇄, 가뭄에 따른 파나마 운하 통행 적체 등에 있어서도 공급망 다각화는 매번 해법으로 이야기 됐습니다.
[함께 보면 좋아요! : 양대 운하 적체와 해상운임 폭등, 포스코플로우의 대응책, 커넥터스]
여기서 공급망 다각화란 특정 국가나 지역에 집중되는 제조 및 물류거점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요. 특정 지역에 발생하는 위기 상황에서 회복 탄력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러 국가와 지역에 거점을 마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류학 교과서에서도 나오는 재고를 최소화하고 주문에 따른 적량 생산을 추구했던 JIT(Just In Time)가 어느 정도 재고를 비축하여 위기 상황에 안정적으로 대응하는 JIC(Just In Case)로 트렌드가 바뀌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함께 보면 좋아요! : 커니가 알려주는 요즘 ‘물류 컨설팅’ 트렌드, 커넥터스]
실제로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공급망은 다시 한 번 선제적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오구일 삼성SDS 물류사업본부장에 따르면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까지 미국 수출을 위한 전진 거점으로 ‘멕시코’와 같은 국가가 이용됐는데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에는 멕시코로 배치됐던 전진 거점이 미국으로 이동하거나, 혹은 다시 아시아로 돌아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비록 실제 부과는 4월 2일까지 유예됐다고 하나, 미국에 인접한 니어쇼어링 거점으로 이용되던 국가인 멕시코까지 무지막지한 25% 관세를 때려버린다고 공표해버린 상황이니까요.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는 중국 일변도의 저임금 생산거점이 멕시코와 인도, 베트남 등 동남아, 그 다음 체코, 폴란드, 헝가리 같은 동유럽 국가 등 4대 권역으로 분산됐습니다. 이들 4대 권역 국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에 와서 전전긍긍하고 있어요. 대미 무역 흑자를 보고 있는 이들 국가에 트럼프가 언제, 어떤 수준의 관세를 때릴지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어쨌든 간에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는 낮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짓는 선택을 하는 기업들이 급증하는 바람에 2023년과 2024년 미국은 해외투자 순유입국 1등이 됐습니다. 몇 년 전까지 이 지위는 중국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전 세계 국가들의 팔을 비틀어서라도 공장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의 위상은 급속히 저하되고 있습니다”
-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다각화의 맹점을 극복하려면
다만, 공급망 다각화 전략에는 맹점이 있습니다. 한 국가에 집중됐던 생산 거점이 여러 국가로 분산됨에 따라 공급망의 복잡성은 ‘지수적’으로 증가하게 되고요. 이에 따라 기업들은 복잡도 증가와 함께 늘어난 제조 원가를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더군다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영향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관세까지 고려하면요? 결국 이는 ‘높은 상품 가격’으로 반영돼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과거 글로벌 공급망 전략은 원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형태로 진행됐습니다. 원가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면 한 군데에 제조 거점을 몰아서 생산해야 하고, 그 선택지는 중국이었습니다. 중국에서 만들어서 전 세계로 뿌리는 것이 가장 쌌고, 이건 지금도 유효합니다. 헌데 이런 전략이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전략으로 변하면서 제조 원가는 올라가게 됐습니다. 그래서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구조적인 인플레이션이고, 이는 꽤나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결국 기업들은 공급망 다각화를 하면서도 ‘원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래야만 필연적으로 생산 원가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되는 거니까요. 말이 쉽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은 유한하기에 제조 및 물류거점을 무한대로 다변화하고, 안전재고를 늘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효율적인 거점과 경로가 어디인지 결정하고, 적정량의 안전재고를 가져가는 의사결정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데이터’와 ‘시스템’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함께 보면 좋아요! : 삼성SDS 디지털 물류의 ‘민첩성’을 만드는 3가지 전략 키워드, 커넥터스]
“모두가 느끼고 있겠지만 과거 4~5년 전과 비교하여 우리 공급망은 너무도 다이나믹해졌습니다. 이건 좋은 말이고 현장에서는 너무나 신경 쓸 것이 많아지고, 의사결정도 어려워졌습니다. 더군다나 물류라는 것이 한 회사가 엔드투엔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부터 쉽지 않습니다. 데이터 정합성과 연결성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시스템과 데이터는 중요합니다. 공급망이 다각화됨에 따라 문제의 복잡도는 지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다차원 함수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매뉴얼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의, 시스템 기반의 의사결정이 필요합니다. 물론 의사결정은 데이터 없이도 할 수 있지만, 이건 우리말로 그냥 ‘통밥(임의로 찍어 넘기기)’으로 하는 거예요. 의사결정의 정확도가 매우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 오구일 삼성SDS 물류사업부장(부사장)
정리하자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우리에게 분명한 위기입니다. 하나 동시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미국의 중국 견제가 계속됨에 따라서 우리 전략 산업이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거든요. 예컨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선박에 거액의 입항세를 내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는데요.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조선업 역량을 갖고 있는 한국 선박의 수주가 증가하거나 미국 취항이 증가하는 등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기회’라 볼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사이에 우리 산업의 기술과 운영을 비롯한 종합적인 역량을 고도화해야 합니다. 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송 교수는 “과거 중국 제조업은 원가 경쟁력만 있었는데 품질, 기술이 몰라보게 좋아져서 한국의 주력 제조업을 추월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며 “만약 미국의 중국 견제가 없었다면 반도체, 전자제품 등 한국 첨단 제조업은 초토화됐을 가능성이 높은데, 최소한 몇 년은 더 버틸 여지가 생겼다”고 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