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공급망 위기를 미리 감지한다는 것의 의미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한다면?”, “미국이 반도체 장비 수출을 중단하면?” 이제는 상상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벌어졌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새 정부는 말합니다. “공급망 위기를 선제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조기경보 시스템을 고도화하겠다”고요.
공급망 조기경보 시스템이란,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지정학적 리스크, 자연재해, 통상 갈등, 전략물자 수급 이슈 등을 데이터로 분석해, 공급망에 어떤 충격이 발생할지 미리 경고해주는 시스템입니다.
이미 세계 주요국은 공급망을 ‘위험관리의 대상’이자 ‘전략적 무기’로 다루고 있습니다. 미국은 ‘국가비상경제권법(IEEPA)’을 바탕으로 핵심 산업과 전략 물자의 수입·수출 흐름을 감시하고, 리스크가 포착되면 관련 산업에 직접 개입합니다. 일본은 일본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을 통해 희소 금속의 공급 위험도를 수시로 진단하고, 필요한 경우 비축, 개발, 대체소재 연구까지 연결합니다. 민간기업인 삼성SDS도 물류 플랫폼 ‘첼로스퀘어’를 통해 공급망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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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려는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도 결국, ‘데이터에 기반한 공급망 모니터링 체계’를 국가 차원에서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여기에는 물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도체, 배터리, 정유, 철강, 식량 등 주요 전략물자 전반이 다뤄집니다. 공급망 관리의 초점이 ‘민간의 선택’이 아닌 ‘국가의 정책’으로 전환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상적으로 보이는 이 시스템이 정교하게 작동하게 되면, 기업은 단기적 혼란을 줄이고, 위기에 대응할 여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부가 아무리 빨리 경고해도 민간 기업의 의사결정 현장까지 그 경고가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겁니다. 수출입 기업, 항만 터미널, 내륙 운송사, 창고 운영사, 통관사, 서로 다른 물류 플랫폼 등 공급망에 연계된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시스템과 데이터를 연동하는, 말처럼 쉽지 않은 과제 또한 수행해야 합니다.
결국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민관 협력 구조와 실시간 정보 공유 체계, 즉 단순한 IT 시스템 구축이 아니라, ‘전략의 실시간화’를 실현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현실에서 얼마나 체감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기업이 ‘경보’를 받는 그 순간, 이미 위기는 지나가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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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전략물자 국적선박 확보, 말처럼 쉬운 일일까
공급망 충격은 단순 감지로 끝나지 않습니다. 실제 물류 대응력은 ‘운송할 수단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에서 갈립니다. 여기 연결되는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물류 공약이 바로 ‘전략물자 국적선박 확보’입니다.
언뜻 들으면 단순한 해운 산업 지원책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분명한 위기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전 세계가 목격한 물류 대란은 ‘선박 확보’가 단순한 시장경쟁이 아니라 국가의 안보 자산임을 각인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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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국제 해운 시장의 변동성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비하려면, 언제든 전략물자를 실어 나를 수 있는 국적선박이 필요하다”고요. 여기서 말하는 전략물자는 곡물, 에너지, 희소금속 등 ‘없으면 국가가 마비되는’ 물자들입니다.
문제는 ‘경제성’과 ‘실효성’의 충돌입니다. 전략물자를 수송하는 선박은 평상시에는 공선으로 위기 시에만 가동되기 때문에, 민간 해운사 입장에선 손익이 맞지 않는 구조입니다. 이 때문에 일본은 ‘긴급임차계약’을 통해 선사와 정부가 평시 계약을 맺고, 위기 시 전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습니다. 미국은 ‘해운안보법(Maritime Security Program)’을 통해 국적선사에 연간 보조금을 지급하고, 위기 상황에서 병참지원에 투입합니다. 한국도 ‘정책 수요’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시장과의 연결고리를 구체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넘어야 할 벽도 뚜렷합니다. 한국 해운업계는 정기선 위주 구조에 치우쳐 있어, 전략물자 수송에 필요한 벌크선, 액화가스선, 탱커 등 ‘비정기선’ 보유율이 낮습니다. 즉, 제도 이전에 선복 구조 개편, 선사 포트폴리오 전환, 국가 위기관리 프로토콜과의 연계 같은 전방위 작업이 필요합니다. 말로는 쉬운 ‘전략물자 국적선박 확보’. 이것이 단순한 캐치프레이즈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부가 비용을 감당하고 민간의 운용을 설계하는 이중 구조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사실 이 문제는 과거에도 한국이 뼈아프게 경험한 바 있습니다. 2016년 한진해운 파산 당시, 글로벌 수출입선에서 국적선사가 사라지자 국내 기업들의 물류망이 마비됐습니다. 항만에 컨테이너가 발 묶였고, 대체 선사 확보에 수출입 기업들은 아우성이었죠.
한진해운은 세계 7위 해운선사이자 한국 최대 국적선사였습니다. 한진해운의 파산은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접근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줬습니다. 실제로 당시 박근혜 정부는 구조조정에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물류 안보라는 관점은 없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후 한국은 해운재건 5개년 계획 등을 통해 국적선사 육성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전략물자 수송에 특화된 선복 구조는 약한 상태입니다.
즉, 전략물자 국적선박 확보는 새로운 과제가 아니라, ‘되풀이되는 숙제’입니다. 이번만큼은 ‘국적선박 확보’라는 말이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 정책과 시장, 현장이 함께 움직이는 구조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③ ‘한국형 리쇼어링’은 통할까
혹여 전략물자를 외국에서 들여올 수 없다면, 결국 남는 선택지는 단 하나입니다. 바로 한국 안에서 만들 수 있도록 생산 역량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이를 위해 ‘전략산업 국내생산 촉진세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반도체, 배터리, 첨단소재, 에너지 등 핵심 산업에 대해 국내 생산을 유도할 수 있도록 세제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구상은 ‘단기 대응’이 아니라, 장기적 공급망 전략의 일부입니다. 예컨대 반도체 장비가 미국 수출 규제로 막힌다면, 그 장비를 해외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만들 수 있는 ‘내재화’ 전략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국산 대체’ 수준이 아닌, 글로벌 가치사슬 안에서 ‘기술 자립’을 이루겠다는 메시지입니다.
비슷한 방향은 글로벌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자국 내 생산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TSMC와의 합작 등으로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을 자국 내에 유치하고 있죠. 그렇다면 한국의 전략은 이들과 얼마나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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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시 2022년부터 ‘국가전략기술 R&D 세액공제’, ‘시설투자 세제지원 확대’ 등을 추진해왔지만, 아직 국내 생산기반은 일부 품목에만 국한돼 있습니다. 특히 희토류나 핵심 금속, 배터리 소재와 같은 분야에서는 여전히 중국, 남미 등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습니다.
결국 ‘전략산업을 국내에서 만든다’는 건 세제 혜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산업 전체를 재배치하는 구조 전환이 필요합니다. 부지와 인력, 에너지, 폐기물 처리 인프라까지 고려한 종합 계획이 필요하죠. 특히 물류와의 연결에서는, 원자재부터 최종 제품까지의 수송 흐름이 국내에 닿도록 하는 공급망 설계가 병행되어야만 실효성이 생깁니다.
물론 세금 몇 푼 깎아준다고 ‘자급자족 국가’가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가 상수가 된 시대, 전략산업을 내재화하는 선택지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