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진로가 글로벌 시장에서 ‘가짜(?) 소주’와 싸우는 법

2025. 6. 25.

K소주 붐이 만든 아이러니

글로벌 주류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술이 뭔지 아시나요? 위스키도, 보드카도, 사케(일본주)도 아닙니다. 바로, 한국의 소주 브랜드 ‘진로’입니다. 영국 주류 전문지 드링크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진로는 2024년까지 24년 연속 전 세계 증류주 판매량 1위를 기록했죠. 9리터 기준 연간 9680만 박스가 팔렸다고 하니, 주당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아는 발베니, 조니워커보다도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이 성공이 오히려 골칫거리를 낳고 있는 듯합니다. 한국 소주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시장엔 정체불명의 ‘소주’들이 쏟아지고 있거든요. 녹색 병에 정체불명의 한글을 흉내 낸 현지 제품들이 마트 진열대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소주의 본산인 한국 사람들이 본다면, 브랜드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고, 출처도 애매합니다. 한국 소주의 외형을 빌려온, 복제 소주들이 세계 각지에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글로벌 주류 대기업들도 이 흐름에 올라탔습니다. 타이거맥주를 생산 및 유통하는 하이네켄아시아퍼시픽은 한국의 소맥을 벤치마킹한 ‘타이거 소주’를 출시했고, 무려 그 모델로 한류스타 GD를 선정했고요. 한 블로거에 따르면 해외 마트 진열대에서는 한글 포장지를 사용하고 플레이버를 입힌 정체불명의 ‘스미노프 소주’가 발견됐습니다. K소주가 하나의 ‘카테고리’가 되자, 누구나 이 게임에 뛰어들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다면 진짜 K소주, 그 원조를 자처하는 100년 기업 하이트진로는 숱한 글로벌 혼종 소주들의 등장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그리고 이들과 경쟁하면서 어떻게 현지 소비자들에게 그들의 ‘헤리티지’를 전하고 있을까요? 데일리트렌드가 지난 19일 주최한 <넥스트 커머스 : 미드이어> 행사에 패널로 참가한 김지훈 하이트진로 글로벌마케팅팀 과장의 발언에서 그 경과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오늘은 ‘진짜 소주’를 둘러싼 정체성 경쟁 현장 이야기입니다.

한국 소주의 교과서가 되기까지

지금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진로와 참이슬도 처음부터 유명한 브랜드는 아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국민 브랜드지만, 해외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죠. 김지훈 과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해외에서는 마치 스타트업처럼 낯선 브랜드였다”고요.

그렇다고 하이트진로가 한두 해 반짝 수출하다 말았던 건 아닙니다. 2016년부터 꾸준히 브랜드를 알리고, 입점을 확대하고, 현지 반응을 쌓아왔습니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쌓아올린 결과가 최근 들어 K콘텐츠와 K뷰티의 부흥이라는 트렌드와 만나면서 폭발력을 가지기 시작한 겁니다.

단순히 K소주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말로 설명하긴 부족한, 현장감 있는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영국에서 열린 글로벌 브랜드 박람회입니다. 김 과장에 따르면 코카콜라, 우버, 잭다니엘 등 쟁쟁한 브랜드들이 함께한 이 행사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을 끌어모은 건 다름 아닌 진로 부스였습니다. 김 과장은 이 장면을 떠올리며 말합니다. “굉장히 많은 분들이 저희 브랜드를 알고 계셨고, 소주를 마시는 퍼포먼스를 자연스럽게 보여주셨어요. 이게 어색한 술이 아니구나, 먹을 수 있는 술로 인식되고 있구나 실감했죠”

물론 브랜드 인지도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숫자로도 증명됩니다. 김 과장이 언급한 표현을 빌리자면, “1년 동안 판매된 소주를 쭉 세우면 지구를 13바퀴 돌고, 에베레스트 산을 5만 개 쌓을 수 있다”고도 합니다. 이건 단순한 언변이 아니라, 해외 수출로 연결된 실질적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지표죠.

‘플레이버’의 활약과 K소주의 부상

하이트진로가 처음부터 이런 성과를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진로와 참이슬이 해외에 거주하는 교민들에게 익숙한 술일지언정, 현지인 소비자들에게까지 잘 알려지지는 않았거든요. 잠시 머릿속 친숙한 이미지를 지워보고, 소주병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이 술을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해볼까요? 녹색 병에, 낯선 글자에, 알코올 도수도 만만치 않은 이걸 먹어도 되는지부터 고민하진 않을까요?

하이트진로 역시 이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단순히 교민 사회에만 의존해선 소주의 외연을 넓히기 어렵다는 현실에요. 김지훈 과장은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교민 분들에게 무작정 참이슬을 전달하는 방법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습니다. 해외 현지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술은 어떤 걸까? 조금이라도 ‘새로움’에 열려 있는 시장은 어디일까? 데이터를 모으고, 트렌드를 분석하고, 하나씩 실험을 시작한 결과물이 바로 ‘플레이버 소주’입니다. (맞습니다, 10여년 전 한국을 달궜던 그 과일소주요. 주당들 뒤집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네요.)

하이트진로가 글로벌에 전개하고 있는 플레이버소주 라인업. 가장 최근에 ‘레몬맛’이 출시됐다. ⓒ하이트진로

하이트진로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플레이버 소주를 수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본 적도 없는 청포도, 딸기, 복숭아, 레몬 등 다양한 과일 맛을 입힌 이 소주는 원래의 소주보다 훨씬 가볍고, 달콤하고, 낯설지 않은 맛으로 해외 현지 소비자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김 과장은 말합니다. “플레이버 제품이 나올 때마다 기존 제품의 성장세 위에 ‘온탑’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요.

지금 하이트진로는 총 6종의 플레이버 소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청포도맛’입니다. 특정 국가에서만 잘 팔리는 것도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고르게 인기를 끌고 있는 맛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죠. 신제품 중에서는 일본 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레몬맛’이 있습니다. 기존의 상큼한 레몬이 아니라, 30대를 타깃으로 만든 새콤한 맛에 단맛을 줄인 버전입니다. 김 과장은 “워낙 플레이버 주류가 많은 일본 시장에서 차별화를 꾀한 제품”이라 소개했습니다.

그렇다고 하이트진로가 ‘플레이버 소주’만으로 글로벌 시장을 밀어붙이진 않습니다. 기존의 ‘참이슬 프레시’ 제품도 꾸준히 성장 중이라는 전언입니다. 즉, 진한 오리지널과 가벼운 플레이버. 두 가지 축이 서로를 보완하며 글로벌 소주 시장의 외연을 넓히고 있는 셈입니다.

어떻게 진짜를 지킬까

하이트진로가 10년 넘게 빌드업한 결과, 소주는 이제 세계무대에서 ‘이상한 술’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진로와 참이슬의 성공이 다른 브랜드들의 진입을 부추기기 시작했거든요. 김지훈 과장은 말합니다. “녹색 병에 한글이 쓰여 있고, 소주라는 이름만 붙으면 시장에 나오는 제품이 200개가 넘는다”고요.

실제로 동남아 마트에 가면 한눈에 정체를 알기 어려운 ‘소주’들이 선물세트처럼 쌓여 있다고 합니다. 은근슬쩍 침투력(?)을 발휘한 북한 소주도 보입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익숙한 브랜드를 찾겠지만, 현지 소비자들은 이 모든 걸 ‘한국 소주’라고 받아들일 수 있죠.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한국 소주 전체에 대한 오해와 피로가 함께 따라붙을 수 있으니까요.

김 과장은 이야기합니다. 결국 ‘정체성’을 선명하게 설계하고, 꾸준히 메시지를 전해온 브랜드가 살아남을 것이라고요. 하이트진로 역시 수많은 아류 브랜드들을 사용하던 소비자들이 결국 그들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유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요. 이 말은 곧, 진로가 만들어낸 ‘소주’라는 개념에 다른 브랜드들이 포섭되기를 바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교민을 넘어서, 메인스트림으로

“지구 어딘가에 한국인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진로는 거기 있습니다” 김지훈 과장의 이 말은 농담 같지만 농담이 아닙니다. 정식 수출 판로가 없는 마다가스카르나 아이슬란드에서도, 그리고 TV 예능 속에서도 한국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소주가 따라가니까요. 그만큼 소주는 한국인의 술이자, 한국인과 함께 이동하는 브랜드가 되었죠.

하지만 하이트진로가 겨냥하는 시장은 더 이상 교민 중심의 니치(Niche) 마켓이 아닙니다. 교민 시장은 출발점일 뿐이고, 이제는 그 바깥 메인스트림 현지인 시장을 공략하고자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목표를 위해 하이트진로는 광고 캠페인 전략부터 달리합니다. 이미 인지도가 높은 국내에서는 광고 물량 공세가 통하지만, 해외에선 이야기가 다릅니다. 아무리 “소주는 진로”라고 외쳐도, 관심 없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는 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이트진로는 해외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문맥 안에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녹여냅니다. 푸시(Push)가 아닌 풀(Pull) 전략. 제품보다 인상, 설명보다 심상(心象)에 집중하는 방식입니다. 예컨대 하이트진로는 일본에서 한류 콘텐츠의 인기에 맞춰 한국 드라마 클리셰로 만든 광고 캠페인을 활용했습니다. 일본인 여성이 이상적으로 보는 키 크고, 깔끔하고, 자상하고, 레이디퍼스트인 ‘남성상’을 잔뜩 녹여낸 영상이죠. 한 번 보면 참 재밌습니다, 이거.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며 새로운 글로벌 비전을 선언합니다. 진로의 대중화. 세계 시장에 진로라는 브랜드를 더 알리자는 목표를 밝혔습니다. 이건 단순히 많이 파는 문제가 아닙니다. 수많은 주류 브랜드와 유사품 사이에서 ‘익숙하고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로 자리 잡는 것. 진로를 단순한 K브랜드가 아닌 글로벌 술 문화의 하나로 포지셔닝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진로는 한국 소주의 개념을 정립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기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로가 대중적일수록, 시장은 그들이 만들어놓은 규칙대로 움직이게 될 거라 믿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