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흑자 서사는 단순합니다. 재고 부담을 직접 지는 1P 직매입 유통(로켓배송)과 물류(빠른 무료 배송, 무료 반품) 서비스를 강화하여 고객을 모았고요. 3P 마켓플레이스 사업(아이템마켓)을 바탕으로 판매자를 모아서 ‘상품 구색’을 확장했고, 2P 풀필먼트 사업(로켓그로스)을 바탕으로 이 구색에 빠른 물류 ‘서비스’를 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료 멤버십(로켓와우)을 통해 이 서비스에 고객을 락인시키고, 충성고객을 지렛대로 구매력을 가져가면서 ‘저렴한 가격’을 만들었죠.
이를 요약하면 쿠팡이 수조 원을 투자해 구축한 물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서비스(Service)와 상품 구색(Selection), 저렴한 가격(Price)의 플라이휠을 돌리는 구조이고요. 아마존을 벤치마킹한 이 성장 서사는 매 분기 실적발표에서 쿠팡 경영진을 통해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번 분기에서도 김범석 CEO의 입에서 나왔죠.
“현재 상황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고객 집착(Customer Obsession), 탁월한 운영(Operational Excellence), 규율 기반 자본 배분(Discipline Capital Allocation)은 창사 이래 쿠팡을 이끌어 온 원칙이며, 지금 이 시기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지난 1월은 우리 프로덕트 커머스(국내 커머스 사업) 매출 성장률의 저점이었으나, 이후 매월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 개선이 이뤄졌고 2월과 3월 들어서 그 속도는 더욱 빨라졌습니다. 우리 회복은 10년 전 로켓배송을 론칭한 이래 비즈니스를 이끌어 온 동일한 동력, 즉 상품 구색(Selection)과 가격(Price), 서비스(Service) 전반에 걸친 ‘와우’ 경험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이 경험은 수년간 수십억 달러(수조 원)의 투자로 구축된 것이며, 시장 내 격차를 지속적으로 벌려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 김범석 쿠팡 CEO, 2026년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 모두발언 中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만든 낙차
그런데 이번 적자의 구조를 뜯어보면, 역설적이게도 쿠팡의 성장을 만든 물류 네트워크가 이번엔 ‘짐이’ 됐습니다. 먼저 이번 실적발표 숫자에 드러난 성장의 낙차부터 확인합니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터지기 직전인 2025년 3분기, 쿠팡의 프로덕트 커머스 부문(국내 커머스 사업) 매출은 고정 환율 기준 18% 성장했습니다. 활성 고객 숫자는 2,470만 명으로 전년 대비 10%, 전 분기 대비로도 3.3% 늘었습니다. 프로덕트 커머스 조정 EBITDA 마진은 8.8%, 영업이익은 1억 6,200만 달러(약 2,400억 원)로 안정적인 흑자를 이어가고 있었죠.
이번 1분기 같은 지표를 보면 다른 세계처럼 보입니다. 쿠팡의 프로덕트 커머스 부문 매출 성장률은 고정 환율 기준 5%로 내려앉았습니다. 지난 4분기 실적 발표에서 쿠팡이 제시한 1분기 매출 전망 범위가 5~10%였으니, 이번 5%는 정확히 최저치입니다. 18%에서 5%로. 한 번의 사고가 만들어낸 낙차입니다.
활성 고객 숫자는 더 직접적입니다. 2025년 3분기 2,470만 명이 고점이었고, 개인정보 유출 사고 영향이 처음 반영된 4분기에는 2,460만 명, 사고의 영향이 온전히 반영된 이번 1분기는 2,390만 명으로 2분기 연속 감소입니다. 이는 2025년 2분기 활성 고객 숫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1년의 시간이 뒤로 돌아간 것과 다름없습니다.
‘일시적’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쿠팡 경영진은 이러한 숫자들이 ‘일시적’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꼽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씩 짚어봅니다.
① 대규모 보상 쿠폰
쿠팡은 피해 고객에게 총 12억 달러(약 1조 6,850억 원) 규모의 쿠폰을 발행했습니다. 개인정보 유출 통지를 받은 3,370만 계정 고객 1인당 5만 원(쿠팡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알럭스 2만 원, 쿠팡트래블 2만 원) 상당의 쿠폰을 발행하였고, 이것이 1월 15일부터 본격적으로 배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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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쿠폰이 1분기에 집중적으로 사용됐고, 쿠팡에 따르면 회계 처리상 쿠폰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매출에서 그대로 차감됩니다. 쿠팡이 물건을 팔았지만, 그 매출 일부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잡히는 구조입니다.
쿠팡은 이것이 이번 1분기의 낮은 매출 성장률과 수익성 악화 모두를 설명한다고 밝혔습니다. 4월까지 사용 가능한 쿠폰 구조로 인해 2분기에도 그 영향이 일부 남겠지만, 같은 규모의 쿠폰이 다시 발행되지 않는 한 이 비용의 재발 가능성은 낮습니다. 이 부분만큼은 쿠팡의 ‘일시적’이라는 주장이 틀리지 않습니다.
② 비어버린 물류의 역할
이게 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앞서 설명한 쿠팡의 성장 구조, 즉 물류 네트워크 내재화는 물량이 늘수록 단위 비용이 줄고 마진이 개선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 구조는 수요가 쿠팡의 예측대로 흘러올 때만 강점이 됩니다.
쿠팡에 따르면 물류 인프라와 인력, 공급망 파트너 관련 투자는 모두 수 분기, 때로는 수 년 앞을 내다보고 수요 예측을 기반으로 진행합니다. 그런데 이번 사고가 터지면서 실제 수요가 그 곡선 아래로 꺾였습니다. 물류센터와 인력, 공급망은 앞으로 늘어날 물량을 기반으로 준비했는데, 실제로 그만큼의 물량이 들어오지 않은 겁니다. 고정비는 나가는데 이를 감당할 매출이 없으니 그 차이가 고스란히 손익에 구멍으로 나타납니다. 이번 1분기 운영 및 판관비(OG&A)가 총 순매출의 29.9%까지 올라간 이유입니다. 전년 동기 대비 2.5%p 높아진 수치입니다.
김범석 대표는 이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상황과 같은 역학 관계라 설명했습니다. 정확히는 이렇습니다. 코로나 때는 수요가 급증했는데 인프라가 부족했고, 지금은 수요가 줄었는데 인프라가 남습니다. 방향은 반대지만, ‘하나의 수요 곡선에 맞춰 구축된 설비가 다른 수요 곡선을 맞이하게 되는’ 역학 관계는 같다는 설명입니다.
플라이휠이 순방향으로 돌 때, 그러니까 고객의 주문이 반복적으로 늘어날 때 쿠팡의 물류 네트워크는 흑자의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고객의 주문이 줄어들자 같은 네트워크는 적자의 이유가 됐습니다. 강점이 약점이 되는 구조적 역설입니다.
다만 이 논리가 성립하려면 전제가 하나 필요합니다. 물량을 창출하는 주문 성장률이 쿠팡의 예상대로 회복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물류 인프라와 네트워크의 가동률이 정상화되면서 수익성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