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의 상품이 무단으로 쿠팡에 팔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는데요. 그가 이 사실을 발견한 과정은 이렇습니다.
지인은 어느 날 고객 주문정보를 통해 그가 네이버에 팔고 있던 ‘유리창 청소기’를 특정 구매자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사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상한 것은 매번 구매자와 실제 상품을 발송받는 사람의 이름이 달랐다는 건데요. 처음 지인은 구매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유리창 청소기를 선물로 주나보다 생각했지만요. 하도 주문이 많아서 이상한 마음에 구매자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고 해요. 혹시 이거 사서 다른데 되팔고 있는 거 아니냐고요.
지인의 질문에 구매자는 가타부타 말을 못했다고 하는데요. 그런 구매자를 보면서 지인은 자신의 추측이 들어 맞았다고 확신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지인은 그의 생각을 실체로 확인하게 되는데요. 그가 팔고 있는 상품과 똑같은 상품을 쿠팡에서 팔고 있는 어떤 셀러를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그 쿠팡 셀러의 방법은 간단합니다. 쿠팡에서 고객 주문이 들어오면요. 지인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방문하여 상품을 주문하고요. 배송 받을 주소만 자신이 아닌 쿠팡에서 주문한 고객의 주소로 기입합니다.
네이버 셀러인 지인은 자체 운영하는 창고에 상품을 재고로 보관하여, 고객 주문에 따라 포장하고 택배사에 출고하고 있었는데요. 쿠팡 판매자는 마치 지인의 회사를 3자 물류회사처럼 가용하여 쿠팡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류 운영을 전혀 하지 않고요.
물론 물류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런 행위가 번거롭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쿠팡과 네이버가 서로 시스템 연동을 한 것은 아니기에, 쿠팡에서 받은 주문 정보를 복사, 붙여넣기 해가면서 네이버에 다시 주문을 해야 하고요. 혹여 네이버에서 해당 상품이 ‘품절’이라도 된다면 그에게 주문한 고객에게 일일이 전화하면서 발송 지연이나 품절 사실을 또 알려야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팡 판매자가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이유는 너무나 명확하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까 말한 ‘유리창 청소기’의 경우 지인은 네이버에서 1만1400원(배송비 3000원 별도)에 팔고 있었는데요. 쿠팡 판매자는 그것을 2만4900원(배송비 무료)에 팔았습니다. 배송비를 포함한 가격으로 비교하더라도 1만500원의 차익이 발생하고요. 쿠팡에 지불하는 수수료를 감각하더라도 남는 장사임이 분명합니다.
위탁 구매대행과 뒤틀린 황천의 데이터
쿠팡 판매자는 상품상세 페이지를 통해 스스로를 ‘위탁 구매대행’ 사업자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지인의 상품 외에 다른 상품들도 같은 방식으로 쿠팡에 올려 팔고 있었고요. 자신이 판매하는 것은 ‘배송대행’ 상품으로, 배송처별로 주소가 다를 수 있다는 안내를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판매자의 방식을 ‘위탁판매’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원청(?)인 네이버 셀러 지인이 이 쿠팡 판매자에게 상품 판매를 ‘위탁’한 것이 아니니까요. 추측컨대 쿠팡 판매자는 네이버에서 특히 저렴하게 팔리던 지인의 상품을 봤고요. 이를 구매하여 쿠팡에 웃돈을 붙여 팔더라도, 경쟁력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지인의 상품을 소매가에 구매하여 쿠팡에 계속 팔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다 보니 발생하는 정보의 괴리가 있었는데요. 예컨대 지인은 롯데택배 대리점과 계약하여 고객에게 택배 발송을 하고 있었는데요. 쿠팡 판매자는 같은 상품을 ‘CJ대한통운’을 통해 발송한다고 고객에게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CJ대한통운이 국내 가장 큰 점유율을 갖고 있는 택배업체기에 자의적으로 배송 정보를 기입한 것으로 추측되고요. 그 결과 쿠팡에서 이 상품을 구매한 고객은 CJ대한통운으로 온다고 했는데, 롯데택배로 받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상품만 제때 온다면 고객은 택배사가 어디든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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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괴리는 지인의 택배 포장 방식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요. 그는 상품과 함께 고객 주문서를 함께 출력하여 택배 포장 안에 동봉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주문서에는 그가 판매하는 유리창 청소기의 ‘가격’이 그대로 노출돼있습니다.
그러니까 쿠팡에서 2만4900원에 유리창 청소기를 구매한 고객은요. 배송받은 상품 박스를 열어보니 그 안에서 ‘1만1400원’에 유리창 청소기를 구매했다는 주문서를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택배사가 어디냐의 이슈와는 다르게, 고객을 당황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이고요. 추후 고객 클레임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CS를 원래 상품을 팔던 네이버 셀러가 받을지, 그 상품을 그대로 옮겨 쿠팡에 팔던 쿠팡 셀러가 받을지는 차치하더라도 말이죠.
마지막으로 소비자와는 상관없이 이슈가 될 가능성이 있는 부분도 보였는데요. 쿠팡 판매자가 지인의 것과 동일한 상품 썸네일과 상품상세 이미지를 상당부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지인에게 확인해보니 그도 직접 찍은 이미지는 아니고, 전달받은 이미지를 사용한 것이라고 했는데요. 어쨌든 콘텐츠 원저작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이미지를 도용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습니다.
실제 한 중국 구매대행 플랫폼 사업자에 따르면 중국의 상품 이미지를 무단으로 사용하여 상품을 팔다가, ‘내용증명’을 받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고 하는데요. 재밌는 건 중국에서 이미지를 가져왔는데, 중국이 아닌 한국업체의 내용증명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고요. 그 이유는 중국업체가 도용해간 한국업체의 이미지를 다시 한국 구매대행업자가 도용하는 연쇄(...)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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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C 시대에도 살아남는 리셀링
여기까지가 사건의 전개인데요. 사실 지인을 당황하게 만든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가 네이버뿐만 아니라 ‘쿠팡’에서도 동일한 유리창 청소기를 팔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에 검색하여 첫 번째로 노출되는 상품은 그의 상품이 아니었고요. 그의 상품을 도용한 그 셀러의 상품이었습니다. 심지어 상품 가격은 그가 올린 것이 훨씬 저렴했음에 불구하고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