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센터 입고 이후 ‘매입’이 발생하는 로켓제휴의 특약매입 구조 ⓒ쿠팡
진정한 의미의 풀필먼트가 등장한다면
배경 설명이 꽤 길었는데요. 이제부터 최근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쿠팡은 지난 3월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로켓그로스’ 출시를 알렸는데요. 사실 로켓그로스는 2020년 로켓제휴부터 이름을 바꿔가며 하고 있던 것인데, 뭔 뜬금없는 소리냐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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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노란색 번호판’ 쿠팡차가 확산됨과 맞물리며 생긴 대표적인 변화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쿠팡은 기존 쿠팡에 소속됐던 배송기사 ‘쿠팡친구’로부터 동의서를 받아서 3월까지 그들의 소속을 물류 자회사 CLS로 전환하고자 했고요. CLS로 전환하는 쿠팡친구에게 ‘화물운송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했습니다. 화물운송 자격증이 있어야만 택배전용 노란색 ‘배’ 번호판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위한 사전 준비를 취한 것이고요. 이를 통해 과거 이상했던 쿠팡의 물류 아닌 풀필먼트 ‘로켓그로스’는 진정한 의미의 ‘물류사업’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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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넥터스 취재 결과 로켓그로스의 변화는 소비자가 마주하는 앞단이 아니라, 판매자가 마주하는 ‘뒷단’에 있었습니다. 지난 4월부터 로켓그로스의 새로운 요금제가 도입된 것인데요. 대표적인 변화는 기존 30%대의 판매가격 대비 수수료를 받았던 로켓그로스의 수수료가 일반 마켓플레이스 입점 수수료와 동일한 카테고리마다 다른 10% 내외의 판매 수수료로 내려갔고요.
여기 보관요금과 입출고요금, 배송요금이 추가로 과금되기 시작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관요금은 1CBM당 1000원(보관기간 1~30일 기준)으로 재고가 쿠팡 물류센터에 체화되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요금이 1CBM당 5000원(91일+)까지 올라가고요. 입출고요금은 상품 사이즈에 따라서 1750원(소형), 1800원(중형), 2400원(대형)이, 배송요금은 2350원(소형), 2500원(중형), 3300원(대형)이 과금됩니다. 본격적으로 쿠팡이 풀필먼트에서 ‘물류비용’을 받기 시작한 거죠.
단순 판매 수수료가 아닌 물류 요금제를 도입하는 것은 쿠팡의 운영 최적화 관점에서 많은 변화를 가지고 오게 됩니다. 이제 쿠팡은 상품 카테고리 특성에 따른 물류 공수와 적재율 등을 감안하여 서로 다른 비용을 판매자에게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풀필먼트 사업자의 오랜 고민 중 하나는 ‘체화재고’인데요. 팔리지 않고 물류센터에 잔류하는 재고가 많으면 많을수록, 물류센터의 생산성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이를 쿠팡은 보관기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늘어나는 비용으로 위험에 대한 금액을 수익화 하게 됐고요. 미래에는 아마존이 이미 하고 있듯, 체화 재고 청산과 관련한 상품까지 론칭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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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물류사업을 공식화한 쿠팡의 편익이 있다면 바로 ‘반품’ 재고처리에 대한 고민이 사라진다는 것인데요. 기존 특약매입 방식에서는 판매된 이후 재고의 소유주가 ‘쿠팡’으로 바뀌었잖아요? 이는 바꿔 말하면 고객 변심으로 반품되는 상품 재고에 대한 소유 주체가 판매자가 아닌 ‘쿠팡’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이번 로켓그로스 요금제 개편으로 쿠팡은 이러한 반품 재고에 대한 책임 역시 판매자에게 전가할 수 있게 됐고요. 당연히 이에 따라서 생기는 운영비용 절감의 효용 역시 쿠팡이 누리게 됩니다.
쿠팡이 ‘집화’ 사업을 시작했다!
노란색 화물차가 확산됨에 따라 쿠팡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모델도 있는데요. 바로 이미 모든 택배사들이 하고 있는 ‘집화(집하)’입니다. 매입한 상품을 물류센터에 보관하여 출고시키는 쿠팡의 물류와는 다르게, 기존 택배사들은 고객사의 물류센터나 사무실에서 상품을 사전 집화하는 과정을 선행해야 하는데요. 택배기사들은 배송 업무 중간중간 화주사 집화 업무를 통해 건당 100~400원 정도의 부가 수익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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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쿠팡이 이미 도입하여 확산하고 있는 택배 대리점 사업 ‘퀵플렉스’ 소속 택배기사라고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사실 본격적으로 쿠팡 안에서 집화 업무가 시작된다는 것의 의미는요. 쿠팡이 그들의 물류망을 통해서 기존 쿠팡 마켓플레이스에 입점했지만, CJ대한통운이나 한진 등 택배사의 물류를 이용하고 있던 판매자의 물류를 뺏어올 수 있다는 것을 뜻하고요. 더 나아가 쿠팡 마켓플레이스뿐만 아니라 네이버나 지마켓, 11번가처럼 쿠팡 외 플랫폼에 입점하여 상품을 판매하는 이들의 물류까지 처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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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다면 진짜 쿠팡은 ‘택배업체’와 동일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게 되는 것이고요. 택배업체가 땅 파서 장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새롭게 이익을 만들 수 있는 ‘수익모델’이 쿠팡 안에 생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상을 단순히 허튼 소리라고 볼 수 없는 것이 쿠팡이 그렇게 많이 따라한 ‘아마존’은 이 비즈니스 모델을 이미 일부 구현하여 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이 운영하는 ‘MCF(Multi-Channel Fulfillment)’가 그것인데요. MCF는 아마존의 물류망을 통해 월마트, 이베이, 쇼피파이와 같은 타 플랫폼 주문 건까지 처리해주는 서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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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과 택배사의 본격 경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커넥터스는 쿠팡이 최근 이 ‘집화’ 관련 업무를 일부 로켓그로스 입점 업체와 협력하여 테스트하기 시작한 것을 취재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기존 로켓그로스가 3자 판매자가 판매할 재고를 쿠팡 물류센터에 입고하는 것부터 시작됐다면요. 이 집화 사업은 3자 판매자가 운영하는 여러 물류센터의 재고를 ‘순회 픽업(밀크런)’하여 쿠팡의 물류망을 태워 최종 고객에게 배송하는 방식입니다.
사실 이미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판매자는 굳이 쿠팡 물류센터까지 상품을 입고하고 여기 입출고 비용과 보관비용으로 대표되는 물류비를 지불하기 아까울 수 있습니다. 물론 쿠팡이 로켓그로스 입점 판매자에게 붙여주는 ‘로켓배송’이나 ‘제트배송’ 뱃지가 만들어내는 매출 상승의 편익이 있지만요. 만약 자가 물류센터를 그대로 운영하면서도 이 뱃지의 효용을 누리고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다면, 굳이 쿠팡 물류센터까지 여러 재고를 입고하는 행위를 선행할 이유는 없겠죠?
그런데 쿠팡이 공식적으로 3자 판매자의 물류센터에서 ‘집화’를 해주는 서비스를 운영한다면요? 3자 판매자는 자사 물류센터에 보관된 상품을 포장하여 쿠팡에 인계함으로 창고요금을 제외한 ‘배송요금’만 쿠팡에 지불할 수 있겠죠?
쿠팡 입장에도 효용은 명확합니다. 앞서 설명했듯 이미 거대한 규모로 자가 물류를 운영하고 있는 업체 입장에서 쿠팡 물류센터에 상품을 굳이 보관한다는 것은 비용 측면에서 효율이 떨어질 수 있고요. 이는 곧 ‘로켓그로스’ 확장을 가로막는 장벽 중 하나일 수 있는데, 이를 집화 서비스를 바탕으로 해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덩달아 기존 쿠팡 마켓플레이스에 입점했지만 CJ대한통운, 한진 등 외부 택배사를 이용하던 고객들까지 쿠팡의 택배망을 이용하도록 하며 택배 관련 수익모델을 구축할 수도 있겠죠.
나아가 지금은 ‘로켓그로스’에 입점한 일부 업체에 한정적으로 집화 서비스를 제공하지만요. 복수 판매채널 입점이 일반적인 국내 택배 환경상 쿠팡 외에 플랫폼에서 발생한 상품 주문에 대한 픽업까지 쿠팡의 택배망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요. 이렇게 된다면 판매자들은 정말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 우체국을 선택하듯, 쿠팡을 하나의 택배 서비스의 대안으로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당장 쿠팡의 물류망이 자체 물류를 처리하기만도 여력이 부족할 수는 있지만요. 물류 투자가 지속되고, 인프라의 여유가 생긴다면 이러한 확장 역시 쿠팡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이미 퀵플렉스로 택배업체의 구조를 갖춘 쿠팡이 심지어 ‘택배업체’들의 비즈니스 영역까지 침투해서 경쟁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근 2023년 1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쿠팡 김범석 의장은 ‘로켓그로스’ 사업이 아직 확장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의중을 밝힌 바 있습니다. 김 의장에 따르면 로켓그로스 판매 상품 수량은 전년 대비 90% 가까이 증가했지만요. 아직 쿠팡이 다루는 전체 매출에서 로켓그로스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불과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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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배자 번호판’이 붙은 쿠팡 화물차의 등장은 이런 쿠팡의 핵심 성장 동력이자 수익모델인 로켓그로스 확장 행보가 본격화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 설명하지 않았지만 4월에 개편된 ‘로켓그로스’에는 판매자의 진입 장벽을 확 낮췄다는 변화도 있었습니다. 기존 일반사업자만 가입할 수 있었던 로켓그로스가 ‘간이사업자’를 대상으로도 확장했고요. 로켓그로스 입점을 위한 계약서 작성도 필요 없어졌습니다.
CJ대한통운을 막론한 택배업체들은 이미 긴장하고 있겠지만요.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더욱 촉각을 기울여야 합니다. 쿠팡의 택배침공은 이제 그 전초전을 시작했습니다. |